메뉴 바로가기 컨텐츠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CAU News
글자 확대축소 영역

맛있는 우리의 소리, 국악인 김정민 동문을 만나다.

관리자 2020-03-02 조회 2098

Q. 김정민 동문님 반갑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이수자,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87학번 국악과 김정민입니다. 지금은 학과가 전통예술학부로 변경되었더라고요.




Part 1. 맛있는 우리 소리, 명창 김정민


Q1.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gukak delicious 라고 소개가 되어 있던데 ‘맛있는 delicious’로 국악을 소개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국악은 아름다운 음악이고 좋아하고 즐기다 보면 너무나 맛있는 음악이라 느껴집니다. 모든 국민이 국악을 좋아하고 맛있게 즐기시기를 기원하는 의미입니다. 



Q2.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이수자가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전수자 중에서 국가의 이수자 심사를 거친 분들을 이수자라고 합니다. 서편제, 강산제를 거쳐서 동편제를 조금은 늦게 입문했는데 흥보가의 이수자가 되었단 것은 제가 올바르게 공부하였고 인정받았다는 것이므로 저에게는 의미가 남다릅니다.



Q3.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만의 국악인으로서 특기나 장점은 무엇인가요?


특별하진 않습니다. 소리가 가진 특성을 연구하고 소리 속으로 녹아들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하는 것이지요.



Q4. 5학년 때 가야금을 배웠다고 하셨는데, 많은 악기 중 가야금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가야금 선율이 너무 좋았어요. 판소리를 접하면서 손을 놓기는 했지만 지금도 가야금 선율을 너무 좋아합니다.



Q5. 학창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지금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 서울에서 안성 캠퍼스까지 저를 소리 공부시키시겠다며 왕래하셨던 故 김소희 명창님, 故 박귀희 명창님이 참 대단하셨다는 생각이 들고 저는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머리가 숙여지고 그분들의 열정에 깊은 감동을 느낍니다.

대회에서 우승하고 올 때면 캠퍼스에 플래카드가 걸리고 잠시지만 스타병에 걸린 적도 있었죠.



Q6. 대학 시절 판소리에 도움이 되었거나 발전할 수 있었던 노력이나 스토리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아버지께서 소리하는 걸 반대하셔서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며 연습을 하고 단전의 힘을 키우려고 맷돌을 배에 얹고 소리를 했던. 지금 생각해보면 아련한 추억이네요.

담력을 키운다고 집에 가는 길에 버스 정거장 두 정거장 전에 내려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객 삼아 소리를 하며 다녔던 시간들, 공원을 몇 바퀴씩 돌며 운동하는 사람들 앞에서 소리를 하고 프랑스 몽마르뜨 언덕에서 버스킹으로 소리를 했던 모두가 발전을 위한 노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7. 대부분 공연에서는 국악인이면 대표적으로 입는 한복이 아닌 다른 복장을 착용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떠한 복장이며 어떤 이유와 의미가 담겨있나요?


흥보가 완창 공연과 대부분의 공연에서 전통 한복을 착용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적벽가 완창 공연 의상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소리와 극의 전개에 맞추어 1부는 제갈량, 2부는 조조의 복장으로 공연을 했지요. 극 중 인물을 더 완벽하게 묘사하여 관객들의 이해도를 높이고 싶었고 다른 완창 공연과 차별화를 두고 싶었습니다. 

퓨전 공연이나 협연 공연 같은 경우 한두 번 드레스 착용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이는 팬분들의 요청에 의한 감사의 이벤트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Q8.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제에서 '겨울을 품은 꽃'의 판소리를 맡으셨는데, 이 작업을 진행하신 특별한 이유 또는 김대중 대통령과의 에피소드가 있나요?


휘모리 영화를 보시고 저의 소리를 직접 듣고 싶어 하셔서 꼭 해드리겠다 약속을 했는데 대통령이 되시고 인연이 닿지 않아서 끝내 들려드리지 못했어요. 마침 추모제를 한다기에 늦었지만, 약속을 지키려고 참석했습니다.



Q9. 굉장히 바쁘신 와중에도 수년간 많은 발전기금과 여전히 중앙대에 많은 애정을 가지시고 2020년에도 중앙인 신년 콘서트 주관 및 판소리 공연을 해주셨는데 명창 김정민 선배님께 중앙대학교란 어떤 의미인가요?


인생에서 큰 세 가지 인연이 있다고 합니다. 같은 피를 나눈 혈연, 같은 고향을 가진 지연, 같은 학교를 나온 학연. 죽어서도 변치 않는 인연이지요. 저는 그렇게 마음에 새기고 삽니다.



Q10. 수많은 음악의 장르 중 국악을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국악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아름답지 않은 음악이 있을까요? 우리의 국악은 오천 년 역사를 살아온 조상님들의 희로애락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열심히 이어받고 발전시켜서 후대에 넘겨줄 의무가 있는 거죠. 이제는 숙명이 되었네요.

국악에는 여러 장르가 있고 각각 나름의 특색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민족의 애환과 환희가 함축되어 창자와 청중이 같은 마음으로 부르고 듣고 느낄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또한, 국악은 우리 민족의 생활 속 얼과 한을 담아 계승, 보존되는 전통 음악이죠. 그러한 아름다움을 지닌 국악은 전통성만으로도 전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음악 장르가 아닐까 싶습니다.



Part 2. 한류 속 성장하는 판소리


Q1. 보았던 공연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무대나 경험이 있나요?


이탈리아 오페라 가수 파바로티를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예술을 향한 열정을 높이 삽니다. 비록 고인이 되셨지만요. 비록 영상을 통해서지만 그분의 공연을 즐겨봅니다.

언젠가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이 세 분이 함께한 공연을 본 적이 있었는데 제가 본 최고의 공연으로 기억합니다.



Q2.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해외 첫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셨는데 우리나라 국악의 해외로 나아가기 위해 어떠한 노력과 지원, 관심이 필요할까요?


우리나라의 발전을 이끌어 온 것은 산업화였죠.

문화는 인간의 감성을 살찌우는 영역인데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경제를 최우선시하는 생활을 합니다. 우리의 경제와 국민의 지식수준은 이미 세계 최고이니 이제는 문화에 관심을 가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럽게 문화가 발전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요즘 BTS 같은 징후가 나타나고 있잖아요.



Q3. 국악의 추세가 다른 대중음악, 악기, 공연 등과 콜라보하여 퓨전을 추구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 가요?


뭔가를 시도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죠. 단 추구하는 장르의 음악을 완전히 이해하고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바람직하겠지만 힘들거나 혹은 어려워서 도피하는 형태의 변화에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Q4. 해외 오페라 공연에서 아무래도 언어적 차이 때문에 관객과 소통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가 어려웠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어떠셨나요? 언어적 차이를 극복하는 동문님만의 노하우가 있나요?


오페라를 관람할 때 대사만으로 이해하면서 보지 않듯 물론 내용을 알고 오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밀라노 공연 때 오신 분들은 우리의 가락이나 풍을 신비하게 느끼면서 관람하신 것 같아요. 

물론 자막이 있긴 했지만. 예술의 영역은 어떠한 다른 설명보다 느낌과 감정이 중요한 것 같아요.



Q5.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 한국 전통의 오페라인 판소리를 처음 하실 때 어떤 감정으로 도전하셨는지 그때의 목표나 심정을 듣고 싶습니다.


이탈리아의 오페라 음악을 무척 좋아합니다. 좋아하니까 많이 들었고요.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 북 장단에 맞춰 혼자 다양한 인물을 소화하는 판소리의 1인이 하는 오페라 특성을 보여주고 싶었고 이는 세계적으로 유일한 문화유산이므로 판소리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려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Q6. 세계에 우리 국악을 알리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을 거라 생각하는데 당시의 에피소드나 극복하기 위해 하셨던 노력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어차피 세계는 문화의 전쟁터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예술을 세상에 알리는 것은 문화인의 의무이고 저 또한 그 일원입니다. 이탈리아 밀라노 공연이 끝나고 밀라노 총 영사님을 비롯한 내빈들께서 너무 좋아하시고 뿌듯해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예술인으로서 긍지를 느꼈습니다.



Q7. 뉴욕과 호주의 공연장에서 공연하게 된 계기와 그때의 상황이 궁금합니다! 특히 그 무대에 올라갔을 때의 너무나도 벅찼을 그 마음이 궁금합니다.


솔직히 그때는 어렸을 때라 그냥 어깨 으쓱해 하며 공연에 임했던 것 같아요. 영화 휘모리 촬영 직후고 상도 받고 했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쑥스럽지요.

(김정민 동문은 영화 ‘휘모리’에서 ‘이임례’역을 맡았다.)



Part 3. 독보적 국악의 울림, 우리 소리의 생명력


Q1. 국악인 김정민의 최종목표와 인간 김정민의 최종목표는 무엇인가요?


어려서 국악에 입문해서 지금껏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해왔다고 자부합니다.

인간 김정민과 국악인 김정민이 둘일 수가 없지요. 41년 판소리 외길만을 걸어왔고 벌써 오십이 훌쩍 넘은 나이인걸요. 그냥 저는 열심히 우리 예술을 세계에 알리고 아름다운 우리 소리를 후세에 전달하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한 가지 더 바란다면 백 년 전 무용수 최승희 선생님처럼 우리의 예술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요.



Q2. 국악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사명은 무엇인가요?


말씀드렸듯이 제가 스승님으로부터 배운 우리 소리를 더 아름답게 발전시켜서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그것이 저의 사명이 아닐까요.

점점 나이가 들면서 제자들이 성장하는 것을 볼 때마다 제가 존경하고 닮고 싶었던 스승님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고 그분들의 발자취를 이어가기 위해 매년 전국가람국악경연대회를 주관, 개최하여 후학 양성에 힘쓰고 인재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3. 본인이 국악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국악인 혹은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나요?


예술인은 공연을 통해서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을 사랑하시는 많은 분들이 저의 공연을 보면서 행복해하시고 저의 소리를 사랑해 주신다면 더 무엇을 바랄 게 있을까요.



Q4. 국악을 선택해서 행복했던 일과 후회됐던 순간이 알고 싶습니다.


인기를 먹고 사는 게 예술인인데 요즘 트로트 열풍이 불고 방탄소년단이 세계를 누비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론 축하하고 응원을 하면서도 전통 예술이 침체된 현실을 생각해보면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이 큽니다. 나도 방향을 잘못 잡았나 혼란스럽기도 하고요. 하지만 오천 년 조상들의 혼을 담은 판소리를 하면서 특히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 했던 공연이 호평을 받았을 때 더할 나위 없는 큰 자긍심과 행복을 느꼈습니다. 

올해 6월에 베니스, 피렌체, 로마에서 세 차례 연속 흥보가 완창 공연을 합니다. 하루건너 한 번씩 완창 공연인 거죠. 미쳤다고들 합니다만 언젠가는 누군가는 해내야만 할 일이지요. 무척 부담스럽지만 그만큼 더 행복합니다.



Q5. 국내 대학 중 최고라 할 수 있는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의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이 시대의 젊은 20, 30대 국악인들에게 말씀해 주실 수 있는 조언이 있을까요?


새로운 것이 좋지요. 인기도 좋고 돈도 좋아요. 시대가 그런 것들을 우선시하니까요. 하지만 소중한 것이 또 있습니다.

전통과 명예입니다. 열심히 꾸준히 하다 보면 전통 예술이 돈도 될 수 있고 명예도 될 수 있습니다.

젊은 후배분들이 어디에다 꿈을 정하든지 세월이 흘렀을 때 후회되지 않는 삶을 사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인터뷰/글 

중앙사랑 27기 박미소 (생명자원공학부 3학년)


사진 출처

김정민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