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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문화교류를 이끄는 음악 신동, 팽려영 동문

관리자 2014-07-21 조회 2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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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 3(), 우리나라를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환영 만찬에서 중국 악기인 고쟁을 연주한 여성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주인공은 바로 우리 대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팽려영(중국명 펑리잉, 음악학과 박사과정) 동문으로, 연주한 아름다운 선율과 더불어 빼어난 미모로 주목을 받았다. 팽 동문은 시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이름이 거의 같아 펑 여사와 직접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박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 여사를 위해 준비한 중국 전통악기 공연에서 팽 동문은 열정적인 연주로 호평을 받았고, 만찬 전반에 대해 시 주석과 부인 펑 여사는 매우 만족스러운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에 금번 파워중앙인은 한중 국가 교류 및 우호 증진에 큰 역할을 도맡은 자랑스런 우리 대학 출신 팽려영 동문을 만나보았다.
 
1. 4살 때부터 고쟁을 연주하셨는데, 고쟁을 연주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아버지가 해금을, 어머니가 양금을 전공하셨어요. 가족들이 모두 전통 악기 전공자이다 보니 가족 분위기가 전통음악을 많이 듣고 배우는 정서였죠. 그러던 차, 부모님을 따라서 4살 때 여행을 갔다가 제가 고쟁을 사달라고 졸랐다고 해요. 어릴 때는 큰 물건에 관심을 많이 가지잖아요? 고쟁이라는 악기가 아무래도 크기가 크다 보니 어린 나이에 탐이 났나 봐요. 그 이후에 배우기 시작하다가 전공까지 하게 된 것 같아요.
 
 
2. 음악 신동이라는 얘기를 듣고 계시는데요, 고쟁의 신동이라는 별명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11살 때 초등학교를 다니지 않다가 3학년으로 예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어요. 그 이후 16살 때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요. 20살이 되던 해에는 한국에 와서 서울대 국악과 석사를 하게 되었어요. 24살에는 중앙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았고요. 인생에 있어 모든 활동에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어요. 그러다 보니 신동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 같아요. 이런 별명이 붙은 거에 너무 감사해요. 앞으로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활동하려고 노력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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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진핑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이름이 비슷하신데 어떤 관련이 있으신건가요?
 
원래는 이름이 완전히 같은 동명이인이었어요. 펑 여사가 졸업한 모교 중, 중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녔어요. 고향까지 산둥성으로 같은 곳이에요. 저는 음악을 하다 보니 어릴 때 학교에서 공연을 많이 했어요. 그 당시 펑리위안 여사님께서 유명한 가수로 활약하셨기에, 공연포스터에 제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을 보고 관객들은 평 여사님이 출연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기대를 하고 공연장에 왔더니 어린 여자아이가 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놀라는 경우가 많았죠. 그런 고로 교장 선생님께서 저를 불러서 이름을 바꾸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는데 저는 싫다고 했어요. 그런데 다음 공연에서 포스터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교장선생님께서 이름을 바꾸어서 포스터를 제작하셨지 뭐예요. 너무 속상해서 집에 와서 엄마에게 말씀 드리면서 울었어요. 그랬더니 엄마께서 결국 이름을 바꾸자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개명한 이름이 평리잉이에요.
 
 
4. 중앙대학교에서 배우거나 얻은 것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 있나요?
 
중국에서는 학교에서 스케줄을 완전히 다 짜주었어요. 스케줄대로 움직여야 된다는 것이 너무 싫고 답답했어요. 그리고 서울대학교에 왔을 때는 한국어도 모를 때였는데 전부 다 제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여서 너무 힘들었어요. 적응도 못했는데 모든 것을 알아서 하라는 것은 저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었죠. 하지만 중앙대는 달랐어요. 좋은 교수님들이 부모님처럼 외국 학생이라고 챙겨주시고 도와주셨어요. 그러면서 저의 의견도 존중해주시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또한 중앙대학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다른 것은 친구들의 관심과 사랑이었어요. 서울대에 다닐 때는 정말 친구 한 명 없이 혼자 다녔어요. 그런데 중앙대 학생들은 한국어를 못하는 저를 위해 사전까지 찾아가면서 대화를 하려고 노력해 주었어요. 너무 감동이었고 고마웠어요. 그 친구들과는 지금까지 연락하고 자주 만나는 가장 친한 친구들이 되었어요.
 
 
5. 고쟁과 가야금은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있는데 한국에서 중국의 전통을 알리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같은 동양권이지만 한국과 일본의 악기는 많이 다르죠. 저에게 있어서 일본 악기는 딱딱한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그에 반해 한국 악기는 부드러운 매력이 있었어요. 중국 사람들은 화려한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중국 음악을 들으면 웅장하고 소리가 상당히 큰 것을 느낄 수 있어요. 그런데 한국의 가야금 소리를 들으면 한국 음악은 평화롭고 온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저는 한국 음악의 이러한 특징에 매력을 느낀 것 같아요.
 
 
6. .중 예술협회 이사장으로 재직하시며 어떤 일을 하는지 간단히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저는 개인적인 힘으로 중국에 한국, 특히 남한의 문화를 알리고 싶어서 이런 협회를 만들게 되었어요. 중국과 한국을 왕래하며 음악과 문화 전반을 교류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많아요. 하지만 저와 같이 한국에 기거하면서 한국 문화를 중국에 지속적으로 소개해주는 사람은 없어요. 제가 유일하게 이 역할을 하고 싶었죠. 그래서 지금 협회를 만들어서 교류활동을 촉진하고자 합니다.
 
7. 가까운 미래에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올해 말에 졸업을 앞두고 있어요. 우선 가장 가까운 미래에 이루어야 할 목표는 중앙대학교 졸업이겠죠? 그 이후에 적어도 5년 안에는 교수로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싶어요.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정말 매력 있는 것 같아요. 그 일을 중앙대학교에서 한다면 더 좋겠죠. 또 중국과 한국 예술 링크 사업도 진행 중에 있는데 그 사업을 발전시켜 중국인 학생들을 한국 학교로 이끌어 여러 가지를 배우고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한국에 대한 홍보도 될 것이기 때문에 좋은 효과를 낼 수 있을 거예요.

8.
중앙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과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개인적으로 다문화 사업을 하고 있어요.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한국 전통악기를 무료로 가르치고 있어요. 저와 같은 처지라고도 볼 수 있는 다문화 가정을 위해 하는 사업이에요. 이를 통해서 다문화 가정이 특별한 가정, 특이한 가정이 아니고 모두 같은 한국 사람으로서 자신의 꿈과 재능을 펼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다문화 사업을 자력으로 실천 중에 있어요.
 
한국 생활에 있어서는 결혼 이야기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저는 남편을 친구 결혼식에서 만났어요. 친구 결혼식에서 제가 악기를 연주했거든요. 남편은 제 연주하는 모습에 반했다고 하는데 저는 남편이 군인이라는 점에 반했어요. 중국 여자들은 보통 한국 군인들을 멋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그때 당시 육군 대위였던 남편에게 반했고 4년에 걸친 연애 끝에 결혼했어요. 남의 결혼식에 가서 눈 맞아서 결혼한 거라 더 기억에 남는 첫 만남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벌써 4년차 부부에요. 후회스러운 것도 있지만 행복한 일이 더 많아서 너무 감사해요.
 
이상으로 팽려영 동문과의 인터뷰를 마치며, 시종일관 밝은 웃음으로 인터뷰에 임해 준 팽 동문의 선한 인상이 기억에 남았다. 음악의 신동이자, 한중예술협회 이사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중앙의 위상이 더 높아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팽려영 동문의 향후 행보에 축복이 있어 한중 우호의 장이 넓혀지기를 바라 본다.
 
 
홍보대사 : 김대영 (공공인재학부 2학년)
                임동현 (경영학부 2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