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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소녀상’ 아버지, 어머니를 만나다 … 김운성 · 김서경 조각가 부부

관리자 2013-01-11 조회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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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시민들은 그녀에게 우산을 씌워주기도 하고, 추운 날씨엔 목도리를 둘러주기도 한다. 새해에는 한복도 입혀줬다. 이렇게 큰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주인공, 그녀는 바로 평화의 소녀상이다.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일본 정부의 사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365일 일본 대사관 앞을 지킨다. 칼바람이 매섭던 1월의 어느 수요일, 그녀를 탄생시킨 김운성(조소학과 84학번), 김서경(조소학과 84학번) 동문 부부를 만났다.
 
 
Part 1. 평화의 소녀상
 
“나는 일본군 위안부였다”라고 용기 내어 슬픈 과거를 밝힌 할머니들. 그들이 맞이한 1천 번 째 수요 집회에서 조각상은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Q.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 저희 부부가 수요 집회를 주관하는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에 도움을 주고자 찾아갔던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위안부 할머니들께서 매주 수요일 마다 일본대사관 앞에 모여서 집회를 하시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무엇을 도와야 할지는 몰랐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집회에 참석하시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한국 사람으로서, 미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같이하지 못한다는 현실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재작년에 협의회를 찾아갔죠. 마침 (그 당시) 다가오는 2011 12 14일 수요 집회가 1천 번 째 되는 날이어서 비석을 세울 계획이 있다고 하더군요. 처음엔 저희가 비석 디자인을 돕는 정도로 시작했어요.
 
Q. 비석에서 소녀상으로 발전한 건가요?
 
-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처음에는 비석 디자인을 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비석이라고 하면 무덤에 있는 돌덩이나 그저 상징물로 생각하기가 쉽잖아요. 비석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어필할 수 있으며, 감동을 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계속 고민하고 회의를 하다가 할머니들의 모습을 형상화하기로 했죠. 할머니들의 삶이 과거의 소녀 시절에서 멈췄다고 생각하고, 할머니들이 끌려갔을 당시의 모습을 표현해보고자 소녀상을 제작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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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평화의 소녀상이 이슈가 될 만큼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느낌이 어떠신가요?
  
- 반응이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일본대사관이나 우리정부에서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정도? 혹은 여성문제를 다루는 사람들의 반응 정도만 예상했지, 시민들이 이렇게까지 크게 관심을 가져주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평화의 소녀상을 그저 조각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소녀로 생각해서 목도리도 둘러주고, 우산도 씌워주면서 관심을 갖는 것이 저희의 마음이 통했다는 증거인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소녀상 작업을 하면서 할머니들의 아픔과 상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1945년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셨지만, 1990년대까지 약 40여년 간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다고 밝힐 수 없던 그 슬픔을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초반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렇게 곱지만은 않았다고 합니다. 정절을 잃었다는 이유로 손가락질을 당하고, ‘환향녀(還鄕女, 화냥년으로 변질)’ 취급을 받으면서 일본군으로부터 받은 상처만큼 고국에서도 설움을 당한 거죠.
 
다 큰 성인 남자도 잡혀가서 가족들과 떨어져 갇히게 되면 무서운 법입니다. 그런데 부모의 손길이 한창 필요한 꿈 많은 13, 14살 여자 아이들을 잡아가 가둬두고 수시로 그런 일을 범하는데... 그에 대한 두려움, 공포심, 상상이나 할 수 있나요? 아마도 가장 큰 절망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었을 겁니다. 반항을 할 수도, 공격을 할 수도 없는 무력감에 그들이 느꼈을 감정들이 조각상 작업을 하면서 일부분이나마 저희에게도 밀려왔습니다. 저희가 표현한 이런 감정들을 시민들이 함께 느끼고 알아준다니 참 감동적이죠.
 
Q. ‘평화의 소녀상모습에 담긴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요?
 
- 어느 한 곳도 의미 없이 만들지 않았습니다. 보통 조각상들은 권위적으로 서 있기 마련인데, 저희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해 눈높이를 맞춰 조금 낮게 제작했어요. 가족과 고향으로부터 억지로 단절된 슬픔을 나타내기 위해, 당시 일반적이었던 댕기머리 대신 거칠게 잘려진 머리모양으로 표현했죠. 또 자신이 지은 죄도 아닌데 내 나라에서도 죄인처럼 살아온 할머니들의 비애를 표현하고자, 소녀상의 발을 온전하게 땅에 붙이지 못한 채 발뒤꿈치를 든 모습으로 나타냈습니다. 시간이 흘러 할머니가 되었지만 소녀에서 멈춰버린 그들의 삶을 표현하려고도 했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조각상은 소녀의 모습이지만 그림자는 할머니의 형상으로 그려냈습니다.
 
소녀 옆의 빈 의자는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첫 번째는 세상을 먼저 떠나가신 할머니들의 빈자리를 쓸쓸하게 표현한 것이고, 두 번째는 소녀와 나란히 앉아 할머니들의 외침을 함께 느껴보는 소통의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갖습니다.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시민들과 소통하려 했던 노력이 좋은 결과물로 탄생한 것 같고, 이 조각상의 여운으로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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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직접 집회에 참여해보니, 어린 중고등학생 친구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어서 놀랐습니다. 그 친구들에게 평화의 소녀상이 어떤 의미로 다가가길 바라시나요?
 
- 오늘은 날이 추워서 평소보다 적은 친구들이 참여한 거예요. 방금 전에 빈 의자가 소통의 의미라고 말씀 드린 것과 같이, 어린 학생들이 평화의 소녀상을 보면서 위안부 문제가 우리 모두의 과제임을 몸소 느끼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똑같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 국민이 더 강해져야 함을 알리는 건전한 교육의 장이 된 것 같아 뿌듯합니다.
 
 
Part 2.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환경재단이 진행한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상’은 한 해 동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눔과 헌신, 도전과 열정, 웃음과 감동을 통해 그늘진 곳을 따뜻하게 밝혀준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하는 상이다.
 
Q. 2012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상’ 문화예술 부문에서 수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려요.
  
) 20년 세월 동안 수요 집회를 이어온 할머니들께서 받으신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 인권을 외치시는 할머니들이 이 세상을 밝게 만드는 주력이시죠. 그 분들 때문에 평화의 소녀상이 제작됐고, 그 덕분에 저희가 수상했으니까, 결국 할머니들께서 받으신 거죠.(웃음)
 
) 상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정말 감사하고 기분이 좋지만, 한편으론 위안부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을 받게 돼 아쉬운 면도 없지 않아 있어요.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많이 커졌지만, 정작 해결된 부분이 없어서 덩실덩실 춤을 출 만큼 기쁘지는 않습니다. 그저 역사를 다시 돌아보고, 앞으로는 이런 일이 반복 되지 않게 하자는 의미에서 주신 상이라고 생각해요.
 
Q. 주한미군 희생자인 효순, 미선 양을 추모하는 조형물 소녀의 꿈도 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조각가들과는 조금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 ‘소녀의 꿈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못다핀 꽃>이라는 소녀의 모습, 둘째는 <별이 되다>라는 효순이와 미선이 두 소녀의 모습입니다. 마지막으로 아주 행복한 아이가 물장구 치는 모습의 <초록을 꿈꾸다>라는 작품이죠.
 
) 저희가 사회문제를 다루는 작품활동만 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창작을 하면서 중요한 사회문제와 직면했을 때, 쉽게 비켜서지 말자라는 신념을 갖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관심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면으로 맞서면서 활동하자는 거죠.
 
) 작가는 작품을 통해 ‘나’를 표현합니다. 여기서 ‘나’라는 존재가 온전히 자신만을 말할 수 있을까요? 이는 사회 속의 ‘나’이고, 조직 속의 ‘나’라고 생각해요. 그 걸 표현하다 보니 평화의 소녀상이나 소녀의 꿈같은 사회적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탄생한 것 같습니다. 저희 부부가 대학시절부터 운동권으로 활동 했었는데, 그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고 보고요.
 
 
Part 3. 그들을 만나다
 
우리 대학 조소학과 84학번 CC(Campus Couple). 김운성 · 김서경 부부, 그들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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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사회의식이 대단하신 것 같아요. 대학생활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 대학교 3학년, 학생회장을 맡기 전까지는 학업에 성실한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실기실과 도서관에 가장 일찍 등교하고 가장 늦게 나오는 학생이었죠. 그런데 학생회장을 맡으면서 3,4학년 때는 학업에 조금 소홀하게 됐어요. 지금 생각하면 학업을 함께 병행하지 못한 점이 아쉽고 후회되기도 합니다.
 
) 저는 대학생활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그 시절 시대적 배경도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고, 대학생이 깨어있어야만 했죠. 지금도 여전히 대학생들이 열린 의식을 갖고 깨어있지 않으면 사회 변혁이 더뎌진다고 생각합니다.
 
Q. 그럼 두 분은 언제부터 조각가의 꿈을 갖게 되셨나요?
 
) 언제부터 꿈을 꿨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이 길을 걷게 된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미술대회에 나가면 상을 받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미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대입을 치르고 결국 조소학과에 들어오게 됐어요. 한마디로 말하면 미술을 좋아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웃음)
 
) 고등학교 때부터 미술부 생활을 했어요. 미술을 하면서 ‘재밌다, 좋다’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또 미술은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작품이 완성되면 완성감과 함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생겨서 좋았습니다. 뭐 재밌게 하다 보니 저도 대학까지 오게 되더라고요.(웃음)
 
Q.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건 큰 행복인 것 같은데요, 조각가로서 좋은 점과 힘든 점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조각가로서 좋은 점이라면, 자기 자신을 치유하는 작업이 가능하다는 거죠. 작업 의뢰가 들어오면 그 작품에 집중하고 고민하면서 스스로 갖고 있던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어요. 조각이라는 게 육체적 노동과 정신적 노동, 그리고 철학적 사고가 꾸준히 이어지는 작업이기 때문에 내 안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생각할 수 있다는 점도 좋은 것 같습니다. 어려운 점이라면... 금전적인 부족함을 안고 가야 한다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죠. 미술학원도 잠깐 했었는데, 아이들에게 제도권 내에서 교육을 한다는 게 저희랑은 잘 맞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만뒀어요.
 
Q. 마지막으로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예전에는 대학에 들어가면 선배들이 ‘대학이라는 곳은 큰 학문을 배우는 곳이다. 너희는 큰 학문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니?’라고 물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살면서 보니, 모든 것이 배움인 것 같습니다. 대학이라는 틀 안에서는 할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아요. 배울 수 있는 것도 많고, 누릴 수 있는 것도 많죠. 대학생으로서 누리는 것들을 사회현상과 연결 지어 보면 더 큰 세상, 더 많은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길 겁니다. 그래서 대학생 때 무엇이든 많이 생각하고 경험해 봤으면 좋겠어요.
 
) 저는 대학생 때 정말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공부도 열심히 해봤고, 제가 느꼈던 사회 문제들을 해결해 보고자 몸소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저는 중앙대학교에 감사해요. 그 전까지의 내 모습을 완전히 바꾸고, 대학 속에서 나 자신에 대한 기초 틀부터 다시 잡아나갈 수 있었으니까요. ‘의에 죽고 참에 살자’라는 말처럼, 열정과 정력을 가지고 자기완성을 해나가는 대학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요. ! 또 현재 많은 대학생들이 자신을 하나의 부속품 정도로만 생각하면서 사는 것 같은데, 취업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또 취업을 한 후에도 자기의 완전성을 느끼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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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 역사적 의식을 갖고 열심히 활동하는 김운성 · 김서경 조각가 부부. 그들은 더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해 전시회도 열 계획이다. 전시회는 오는 8 5()부터 2주간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되며, 100여 명의 작가들과 정신대 문제를 주제로 한 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다.
 
아울러 평화의 소녀상은 인권과 여성, 평화를 위해 세계로 뻗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첫 번째 구름판은 미국과 싱가폴이 될 것이며, 독일과 중국, 일본까지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는 해외 진출 자금 마련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 중이다.
 
2013, 힘차게 떠오른 새해의 태양처럼 김운성 · 김서경 부부가 만들어낼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기대해 본다.
 
 
취재 : 홍보대사 윤수경(경영학과 4학년)
   홍보대사 최효선(식품영양학과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