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컨텐츠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CAU News
글자 확대축소 영역

남아공 월드컵 대표, 골 넣는 수비수 곽태휘 동문(체육교육과 01학번)

관리자 2010-05-24 조회 7319

 

남아공 월드컵 대표

골 넣는 수비수 곽태휘 동문(체육교육과 01학번)

 

 

지난 5월 17일 공개된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중앙수비수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중앙대 출신 선수가 있다. 그 이름은 바로 곽태휘(체육교육과 01학번).

 

  

사실 곽태휘 선수는 곽태휘라는 이름 석 자보다 ‘골 넣는 수비수’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2007년, FA컵 결승전에서 수비수임에도 불구하고 벼락같은 중거리 슈팅으로 골을 터뜨리며 자신의 존재를 전국에 알린 것이다. 거침없는 플레이로 공격과 수비를 넘나들며 대한민국 축구의 새로운 해결사로 떠오르고 있는 29살 늦깎이 태극전사 곽태휘 동문의 멈추지 않는 도전일기를 살펴보자.

  

결코 포기를 몰랐던 어린 시절

 

곽태휘 선수는 고등학교 1학년이라는 조금 늦은 시기에 축구를 시작했다. 물론 처음 축구를 하겠다고 했을 때 그의 부모님은 그를 말렸다. 고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아들이 뒤늦게 축구를 시작하겠다는데 말리지 않을 부모가 있겠는가. 하지만 곽태휘는 물러서지 않았다. “축구부가 없는 학교에는 가지 않겠다”며 ‘등교거부’까지 선언했다고 한다. 결국 그의 아버지가 백기를 들었다. 결정을 내린 아버지는 적극적으로 아들을 도왔다. 아들 손을 잡고 무작정 당시 축구명문으로 소문난 대구 공고로 향했다. 곽병유 대구공고 감독은 곽태휘 선수의 아버지와 곽태휘 선수와의 첫 대면에서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 졸업 전에 경기를 뛰지 못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놨다. 곽태휘 선수의 아버지는 “테스트를 보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곽태휘는 “축구가 너무 하고 싶습니다.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했다. 일단 100m를 뛰게 한 곽 감독은 “달릴 수 있을 때까지 달려보라”고 지시했다. 또래 아이들보다 뛰어난 운동신경을 자랑하는 곽태휘 였지만 운동부 수준의 체력을 따라갈 순 없었다. 대신 오기가 있었다. 축구부에 들어가기 위해 열 번은 더 토했지만 계속해서 달렸고 결국 감독은 곽태휘 선수의 축구부 입단을 허락했다. 시작은 늦었지만 학습능력은 탁월했다. 팀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내서 기본기를 다졌고, 동료들의 경기를 보며 이미지트레이닝도 꾸준히 했다. 2학년이 되던 해 곽 감독은 곽태휘를 경기에 내보냈다. 축구 입문 1년 여만에 6~7년 빨리 시작한 또래들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성장한 결과였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 무서운 시련이 닥쳤다. 훈련 중 공에 눈을 맞은 것이다. 장시간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왼쪽 시력은 돌아오지 않았고 흐릿하게 형체만 분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수술을 한 의사는 축구를 그만두라고 권했다. 하지만 곽태휘는 왼쪽 시력을 잃는 상처를 겪었지만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왼쪽 눈과 맞바꾼 축구는 그의 전부였다.

  

 

 

고교 졸업 당시에는 K-리그 구단의 영입제안까지 받았다. 하지만 “대학에서 기본기를 쌓는 게 더 나을 수 있다”는 곽 감독의 조언에 중앙대로 진학했다. 진학한 후에도 주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2003년에는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표 팀에 뽑혀 태극마크를 다는 영광까지 누렸다. 그리고 2005년 FC 서울에 입단해 프로 선수의 꿈을 이뤘다. 시간이 흘러 곽태휘 선수는 허정무팀의 중앙수비수로 성장했고, 월드컵 무대에 서게 됐다. 곽태휘 선수의 아버지는 한 인터뷰에서 “지나고 보니 태휘가 축구를 하겠다고 고집을 피워준 것이 고맙다”고 말했다.

  

HISTORY - 무명에서 황태자로

 

△ FC서울에서 활동하던 시절 모습

  

곽태휘선수가 프로 무대에 얼굴을 드러낸 것은 2005년. 중앙대를 거쳐 FC 서울에 입단한 그는 튼실한 체격과 안정감 있는 수비력, 독보적인 제공권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프로 무대에서 처음부터 비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곽태휘선수의 운명이 바뀐 때는 2007년. 허정무 감독의 부름을 받고 전남으로 이적하면서부터다. 서울에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던 그는 갑작스레 김진규선수와 맞트레이드 돼 광양 땅으로 둥지를 옮겼다. 많이 섭섭하고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팀의 주축 선수로 거듭났다. 그리고 그 해 FA컵 결승전 전남-포항 전에서 벼락같은 중거리 슈팅으로 골을 터뜨리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자신의 존재를 전국에 알렸다. 대표 팀 승선도 곧바로 이어졌다. 곽태휘선수가 “나에게 기회를 주고 키워준 은인”이라 표현한 허정무 감독이 대표 팀 사령탑이 되면서 그를 불렀다. 대표 경력이라고는 대학 선발과 올림픽 대표 팀 상비군이 전부였던 그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곽태휘 선수는 허정무 감독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곧바로 증명했다. 안정적인 수비력을 펼치면서도 위기의 순간에 골을 터트려 키 플레이어 중 한 명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는 A매치 두 번째 경기였던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지역예선 투르크메니스탄 전에서 대표팀의 550분 골 갈증을 해소하는 헤딩슛을 작렬하며, 일약 ‘허정무호의 황태자’로 등극했다.

  

기쁨도 잠시, 한국 축구의 새 대들보로 각광 받던 순간 부상에 쓰러지고 말았다. 2008년 시즌 초반 곽태휘 선수는 발목에 부상을 입었다. 약 두 달 동안 고생하다가 차도가 없어 결국 독일로 날아가 인대접합과 염증제거 수술을 받았다. 6개월의 고된 재활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는 그 해 가을, 팀에 복귀했다. 컵대회 결승 진출을 이끌었고, 허정무호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었던 UAE전에서는 또 한 번 머리로 쐐기 골을 넣으며 자신의 귀환을 알렸다. 하지만, 부상은 또 다시 찾아왔다. 곽태휘선수는 2008년 11월 K리그 경기에서 오른쪽 무릎 인대가 손상되는 중상을 입었다. 축구선수 인생의 치명적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수술과 재활 치료로 1년 가까이 그라운드를 밟을 수 없었다. 그 기간 동안 허정무호는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일궈냈고, 곽태휘는 축구팬들에게 그렇게 잊혀져 갔다. 곽태휘 본인의 마음고생은 더했다. 하지만 허정무 감독 머릿속에는 여전히 곽태휘 이름 석 자가 있었다. 그가 재활을 완벽히 마치자 허정무 감독은 2009년 11월 유럽 원정, 2010년 동아시아연맹선수권과 코트디부아르전 등 주요 경기에 그를 소집하며 중용했다. 2010년 2월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중국전에서는 오랜 공백 탓인지 결정적인 실책을 범하면서 축구팬들의 모진 질타를 받아야했다. 하지만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마법처럼 그는 다시 일어났다. 바로 다음 달에 열린 코트디부아르와의 친선전에서 팀을 승리로 이끄는 슈팅을 날리며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곽태휘 선수는 많은 우여곡절 끝에 현재 남아공 월드컵 26인 엔트리에 포함되며 월드컵 본선에서 뛸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 2년의 시련에 굴하지 않고 투혼을 보인 결과 모든 축구 선수가 꿈꾸는 무대에 설 기회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더 높이 비상하라 곽태휘!

 

곽태휘 선수는 올해 초부터 일본의 J리그에서 뛰고 있다. 그가 소속된 교토상가FC는 박지성 선수가 프로데뷔를 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곽태휘 선수는 첫 해외 진출이지만 이미 주전 자리를 확보한 상태다. 월드컵 예비엔트리 발표가 있었던 다음날인 5월 1일에는 J리그에서 데뷔 골까지 터트리며 그야말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

  

교토상가 FC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곽태휘 선수를 “인간적이고 성실한 사람이다. 축구에 대한 자세도 무척 열심이다. 그런 의미에서 팀에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곽태휘 선수는 팀에서 언제나 가장 먼저 그라운드에 나오고 가장 늦게 까지 연습하는 연습 벌레로도 유명하다. 늦깎이 축구선수로 출발해 남모를 아픔도 많았던 곽태휘, 하지만 시련은 어릴 적부터 그를 더욱 강하게 단련시켰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가 택한 건 묵묵히 땀 흘리며 연습 하는 것이었다. 그는 왼쪽 시력이 안 좋은 것뿐만 아니라 축구선수로는 최악의 조건이라는 평발을 가졌다. 하지만 어떤 불리한 신체적 조건도 축구를 향한 그의 열정만큼은 막을 수 없었다. 그 노력의 결과로 곽태휘 선수는 드디어 월드컵 국가대표로는 첫 도전을 하게 되었다.

  

“2년 동안 월드컵을 위해서 준비했다. 그간 부상도 있었고 시련도 당했지만 다시 일어나서 축구했다. 부상을 당했는데 또다시 복귀했다가 또 부상을 당하고 노력해서 극복하고… 그런 부분에서 나보고 인간승리다 그런 말들이 나오는 거 같은데 나 말고도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부상을 당하는 거고 나보다 더한 시련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나보고 인간 승리라고 하는 건 좀 부끄럽다. 사실 일반인도 시련을 당하고 다시 일어나지 않는가. 나도 다시 재기한 뒤 뛰게 돼 기분이 좋다. 개인적인 욕심은 없다. 한국의 목표가 원정 첫 16강 진출 아닌가. 개인적인 목표를 내세우기보다는 우리가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최대한 내가 희생하려고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월드컵이 꿈의 무대이기도 하지만 충분히 즐기고 싶다.”

 

 

 

 

-곽태휘

  

결코 포기를 몰랐던 곽태휘 선수, 인생의 고비마다 기적 같은 역전승을 보여준 그는 진정한 축구선수다. 이제 그라운드에서의 또 다른 도전이 그를 기다린다. 남들보다 좀 더 멀리 돌아서 지금의 이 자리까지 왔다. 이제는 남몰래 흘린 땀과 눈물의 결실을 거둘 때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골 넣는 수비수 곽태휘’의 명성이 다시 한번 재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곽태휘 선수 프로필

 

  이름 : 곽태휘 

  출생 : 1981.07.08 

  신장/체중 : 185/80

  소속구단 : 교토상가FC(일본)

  포지션 : DF 

  데뷔 : 2005년 FC 서울 입단

  A매치출장/골 : 12/4

  A매치기록

  데뷔: 2008.01.30 한국vs 칠레전 (친선경기, 서울)

  첫 득점: 2008.02.06 한국vs 투르크메니스탄전 (월드컵예선, 서울)

 

경력사항

  2010 동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

  2009.12~ 교토상가 FC

  2008.02 동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

  2007.07~2009.12 전남 드래곤즈

  2005~2007.07 FC 서울

  2004 올림픽 대표 상비군

  

  

  

 

원고작성 : 홍보대사 김정연(신문방송)

 

* 본 기사는 곽태휘 동문이 월드컵에서 맹활약 하기를 기원하며 각종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던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돌아오면 직접 홍보대사와 만나서 중앙대에서의 학창시절을 들려주겠다고 곽태휘 동문측에서 알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