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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 국가대표 김용화 감독 (영화학과 91학번)

관리자 2009-10-20 조회 4655

 

  

 

관객수 850만을 돌파하며 역대 한국영화 흥행순위 6위까지 올라선 영화 '국가대표'. 개봉 초기만 하더라도 영화 ‘해운대’의 쓰나미에 밀려 비운의 운명을 맞이 할 것처럼 보였다. 관객의 입소문으로 영화처럼 극적인 흥행성적을 거둔 영화, 아직도 관객들은 국가대표를 찾고 있다.

  

지난 2003년 ‘오! 브라더스’로 데뷔하여 320만 관객을 끌어들인 김용화 감독(영화학과 91학번), 2006년 ‘미녀는 괴로워’로 650만의 메가 히트를 기록하고 그 후 3년 뒤인 지금 ‘국가대표’ 감독을 맡아 850만 명의 관객수를 기록하며 영화계의 흥행감독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그에겐 어떤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일까?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그의 뒷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를 만났다.

  

대학 학창 시절, 김용화 감독님은 어떤 학생이었나요?

한 해의 재수를 거쳐 중앙대학교 영화학과에 입학했어요. 당시 91학번 33기 중 제가 꼴찌로 문 닫고 들어갔지요. 저는 학창시절에 공부를 잘하거나 하는 그런 학생은 절대 아니었어요. 오히려 놀길 잘했지(웃음). 중앙대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음악에만 미쳐 대학 1,2학년 동안 음악 밴드 ‘Seekers’의 보컬생활을 했어요. 학과공부는 완전 뒷전이었지. 학교에서 보면 기껏 입학시켜놨더니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는 불량학생 이었을 거에요.

  

그러다 한 7년 정도 학교를 쉬었어요. 그 후 3학년에 재입학 하게 되고 주변의 권유로 학생회장도 하게 되었어요. 그땐 정말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둘렀지요(웃음). 그래도 재입학 후에는 졸업 때까지 오직 영화에만 집중했던 것 같아요.

  

7년간의 긴 휴학을 한 특별한 사연이 있었을 것 같은데…

사실 휴학을 하게 된 이유는 부모님의 병환으로 가계가 기우면서 시작되었어요. 그러다 1년 후 아버지께서 별세 하시고 또 1년 후 어머니 마저 돌아가셨지요. 뭐 자연스레 생계를 책임지게 되면서 예상치 못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됐었죠.

  

막노동 1년 정도, 채석장 인부 6개월, 운전기사 1년, 또 생선장사를 한 3~4년쯤 했어요. 학업을 그만두며 했던 사회생활이라 제 인생의 중심 획을 그어 주었어요.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다 방면의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사람대하는 법도 배웠고, 또 사람에 대한 통찰력도 이때 생겼던 것 같아요.

  

잠깐 음악 얘기도 해주셨는데, 원래 노래을 잘 하셨나요?

아니에요. 사실 음악이 하고 싶어 오디션 보기 몇 주 전부터 한 노래만 이불 뒤집어 쓰고 죽어라 연습했어요. 그래서 그 노래만 마스터 해서 오디션 때 선배들을 속이고 들어갔지요(웃음).

  

거기서 ‘국가대표’ 음악 감독을 맡았던 재학이를 만났어요. 나는 보컬을 맡고 재학이는 베이스를 쳤어요. 그렇게 Seeker ‘전설의 8기’ 가 탄생했지요(웃음). 상식적으로 보통 밴드에서는 보컬이 가장 인기가 많은데, 당시 우리 밴드는 어떻게 된 게 베이시스트의 인기가 최고 였어요. 그래서 전 항상 2인자 였지요.

  

(이재학 음악감독은 중앙대 원예학과 91학번으로 ‘국가대표’, ‘미녀는 괴로워’, ‘당신이 잠든 사이에’, ‘마이 뉴 파트너’ 등의 영화에서 음악감독을 맡았다. 현재는 그룹 ‘Loveholics’ 에서 음반 활동을 하고 있다.)

  

학창 시절은 “연애를 빼면 시체다” 라는 말이 있는데, 기억에 남는 연애 경험담에 대해 말씀 해주시겠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에 중앙대 불문과에 미녀군단이 있었어요. 그 중 한 친구를 재학이와 함께 마음에 들어 했어요. 뭐 결국은 그 친구가 저를 좋아해 주는 바람에 만남을 가지게 되었지요. 대학교 1, 2학년 한 2년 정도 풋풋하게 만났죠.

  

그 분 과는 처음 어떻게 만남이 시작 되었나요?

어느 날 한 친구가 소개팅을 시켜주겠다고 했어요. 무작정 나오라 그래서 일단 나가보려고 마음먹고 있던 중 도서관에서 한 여자를 우연히 봤어요. 첫눈에 너무 청초하고, 청순하고, 또 예쁘고 해서 ‘저런 친구가 소개팅에 나왔으면 좋겠다’ 고 내심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소개팅에 나가 보니 거짓말처럼 그 친구가 제 앞에 앉아 있었던 거에요. 알고 보니 그 친구는 ‘Seeker’ 팬이었고 절 소개시켜 달라고 제 친구에게 부탁했었대요. 뭐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만남이 시작되었죠.

  

그러다 제가 휴학을 하게 되면서 이별을 하게 되었어요. 뭐 젊은 시절 돈을 주고서도 살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에요.

  

혹시 그때의 추억을 영화로 풀어 놓은 것은 없나요?

아, 하루는 함께 연극을 보러 갔었어요. 연극을 보던 중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그 친구에게서 동맥 탁,탁 뛰는 것이 느꼈어요. 가는 다리에서 파릇파릇 뛰는 그 모습이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그것이 영감이 되어 영화 ‘오! 브라더스’ 에서 녹여 내었지요.  

  

대학시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이 있나요?

음.. 한번은 학교에서 뱀을 구워 먹은 적이 있어요. 선배가 뱀을 산채로 잡아와서는 부르는 거에요. 운동장 한가운데서 땅을 파고 불을 지펴 살아있는 뱀을 즉석에서 구워 먹었지요. 그래서 사실 제가 뱀 맛을 좀 알아요(웃음).

  

어떻게, 효과는 좀 보셨나요?

효과요? 사실 아직도 그 효과를 보고 있지요.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영화에 대한 열정과 스테미너는 그때 먹었던 뱀으로 인해 생긴 것 같아요.

 

재학시절에 얻은 값진 인연이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을 대학시절에 만났어요. 바로 중앙대 은사님 중 4학년 때 지도교수님이셨던 이광모 교수님이에요. 졸업작품인 ‘자반 고등어’를 만들 때 그 작품을 보시더니 너는 조감독을 거치지 말고 바로 감독을 해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래서 졸업 후 교수님께서 계시던 영화사에 들어가 바로 일을 시작 했어요. 저의 실낱 같은 재능을 믿고 오늘날까지 가장 큰 용기를 주셨어요.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사람이지요.

 

(현재 영화사 ‘백두대간’ 을 운영하고 있는 이광모대표는 1996~2002년 중앙대 영화학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영화 ‘아름다운 시절’, ‘나무 그림 동화’ 등을 만들어낸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당시 영화 ‘아름다운 시절’로 제36회 대종상 영화제 감독상(1999년), 제35회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1999년) 을 수상하였고 칸 영화제 감독주간으로 초청되기도 하였다.

 

영화‘국가대표’ 주인공 이었던 배우 ‘하정우’씨도 중앙대 연극학과 출신인데, 혹시 재학 시절부터 알고 계셨나요?

제가 4학년 즈음 인가, 그때 정우가 신입생으로 학교를 들어왔다고 했어요. 그래서 정우는 나를 알고 있었다는데 나는 정우를 몰랐어요. 뭐 고 학번에다 나이까지 많아 말도 한번 못 걸어 봤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오늘날의 김용화 감독님을 있게 한 것, 그것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음.. 아까도 말 했듯이 대학시절 긴 휴학 기간이 있었잖아요. 그때 정말 숱한 경험을 다 하고 난 뒤 재입학을 통해 대학 3, 4학년을 보냈어요. 그 시기 동안 학교는 제게 오로지 영화만을 생각하게 해 주었어요. 또한 저의 관심사 역시 오직 영화였고 그렇게 영화에만 몰두하고 몰입 했던 것 이 지금의 성장 동력이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학교라는 환경이 있었기에 그것이 가능했던 것이고 학생이었으므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중앙대학교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제가 아직 젊고 또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는 위치에 서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도 아직은 배워야 할 부분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선배로서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심장이 떨리는 일을 찾아, 그 일을 정말 열정적으로 하라’ 에요. 중앙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면 모두들 똑똑하고 훌륭한 학생이에요. 다만 학창시절을 보낼 때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이 학문이든, 연애든, 사업이든 그 어떤 것 이든 자신의 심장을 떨리게 한다면 그것을 했으면 해요.

  

물론 그 일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죠. 그걸 찾기 위해 우리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고 학업을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많은 경험을 해보고 책도 많이 읽으라고 하잖아요. 그리고 10대든 20대든 혹은 30대든, 나이를 막론하고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꼭 찾아온다고 확신해요.

  

지금은 사회가 다변화 되어 있어 직업의 종류도 다양하잖아요. 알려지지 않은 직업도 굉장히 많아요. 자기가 열정을 다해 할 수 있는 일 그거면 돼요.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인생인 것 같아요.

  

 

 

질문을 마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선배님의 다음 작품에 대해 슬그머니 여쭈어 보았다. 지금 생각하는 작품이 몇 가지 있긴 하지만 당분간은 푹 쉬고 싶으시다는 말씀을 하시며 웃음을 지으시는 선배님. 그런 선배님의 웃음 속에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서 오는 소소한 향기가 묻어 나오는 듯 했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와 기사를 쓰던 중, 예기치 못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김용화 감독이 ‘오늘의 젊은 예술가 상’ 영화부문의 수상자로 선정 되었다는 것이다. 방금 막 끝낸 인터뷰 덕분일까? 놀랍기도 하면서 왠지 모르게 수상소식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만 느껴졌다. “이런 사람인데 당연히 받는 상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드는 것이다.

  

김용화 감독, 유명한 영화 감독님과 인터뷰 하고 온 기분이 아니라 친한 학교 선배와 술 한잔 기울이며 세상살이, 좋은 이야기를 듣고 온 기분이다.

  

앞으로도 선배님의 눈부신 활약을 기대한다.

  

  

 

취재 및 촬영: 홍보대사 이태형(경영학부), 류미정(문헌정보학과), 이인영(광고홍보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