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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인 뮤지컬 영화를 탄생시킨 영화감독, 영화학과 92학번 조정래 동문을 만나다

관리자 2023-08-29 조회 1475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영화학과(연출 전공) 92학번으로 지금까지 6편의 영화를 연출하고 제작한 영화감독 조정래입니다.



PART 1.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조정래, 현재의 자리에 있기까지

 

Q1. 고등학교 재학 시절 극단에서 배우 생활을 하셨는데요. 연기를 하시면서 영화연출에 관심을 가지게 되신 건가요? 아니면 영화학을 전공하시게 된 다른 배경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교회에서 성극을 하면서 연기에 관심이 생겨 극단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단역부터 주연까지 다양한 역할을 맡으면서 연기의 매력에 빠졌는데요.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바쁜 와중에도 학업 성적을 향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앙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이죠.

저는 사실 연극학과를 희망하던 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제가 소속되어 있던 극단 대표님께서 저에게 영화학과 진학을 권유하셨고, 그 영향으로 영화학과에 진학하게 됐는데요. 1학년 때는 사실 연기에 관심이 더 컸습니다. 그래서 영화학과 진학을 후회하고 방황했던 적도 있었지만 대학생 때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면서 영화의 매력에 매료됐고 현재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감독이 됐습니다. 돌이켜 보면 당시 극단 대표님이 저에겐 귀인이신 거죠. 덕분에 이렇게 영화를 제작하고 있으니까요.

 

Q2. 대학교 재학 시절 관련 질문입니다.


Q2-1. 판소리 고법 대회에 출전하셔서 1등을 하시는 등 국악 활동을 활발히 하셨는데요. 국악 활동을 하시면서 국악과 영화의 융합을 꿈꾸어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국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1993년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 <서편제>를 본 것입니다. 당시 영화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는데요.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저의 마음 어디 한 켠을 툭 건드린 것 같습니다. 영화라는 장르의 힘이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었고 나아가 우리 음악인 국악에 매료될 수 있었습니다.

판소리에 매료돼 소리를 배울 결심을 하게 됐는데요. 국악 카세트 테이프를 수집해서 무작정 음악을 들으며 외우고, 관련 서적들을 보며 공부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오타쿠’였던 것이죠. 과에서는 ‘국악에 미친 친구’라고 할 정도로 판소리를 시도 때도 없이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우리 학교에 한국음악과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에겐 국악이란 분야에 관심을 넓혀가기 좋은 환경이었던 것이었죠. 물론 그럼에도 영화에 관한 공부와 고민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군 복학 후 3학년 때는 ‘된장국’이라는 국악 동아리에 함께 하면서, 전공자들로부터 전문적으로 국악을 배울 기회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당시 음악을 하면서 ‘우리의 음악인 국악을 영화에 융합시키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는데요. 이후 꾸준히 영화 제작 작업과 음악 활동을 병행해 온 것이 국악과 영화의 융합이라는 결과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국악에 대한 사랑이 작품 활동으로 이어진 것이죠.


Q2-2. 영화 <광대 소리꾼>의 프로토타입이 대학교 재학 시절 작성하신 단편 시나리오 <회심곡>으로 알고 있습니다. <회심곡>을 작성하신 당시에도 추후 시나리오 활용에 대해 꿈꾸셨는지 궁금합니다.

영화 <광대 소리꾼>의 모티프가 된 작품이 제가 1998년 3학년 2학기 시나리오 작법 수업 시간 때 쓴 단편 시나리오입니다. 한 부부의 일생을 다루는 일종의 뮤직비디오 같은 시나리오였는데요. 같은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란 남성과 여성이 사귀고 결혼에 이르러 노년을 함께 하며 삶을 회고하는 내용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인생관을 반영한 것인데요. 영화 <광대 소리꾼> 주인공 학규와 간난의 서사에 토대가 됐습니다. ‘고통스러운 삶이지만 서로 의지하면 행복할 수 있다’는 주제를 내포하고자 했습니다.

당시에는 교수님께 혼이 났습니다. 단편 시나리오인데 어떻게 예산 1억으로도 찍을 수 없는 시나리오를 작성해 왔냐는 것이었습니다. 근데 교수님께서 해당 과목 성적을 A+를 주셨더라고요. 큰 용기를 얻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해당 시나리오를 ‘꼭 장편으로 만들고 싶다’기 보단 ‘언젠가 때가 되면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을 졸업 후에도 꾸준히 해왔습니다. 그 꿈을 이루게 돼 감사하고 행복하네요.


Q2-3. 대학교 재학 시절 <회심곡>과 같은 훌륭한 시나리오를 어떻게 작성하실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대학생 때 정말 다양한 경험을 많이 했고, 그 경험 속에서 저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사람 ‘조정래’에 대해 계속해서 물음을 던지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했던 것이죠. 그 경험이 비록 과제이긴 하지만 의미있는 시나리오 작성으로 이어졌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시나리오는 진심이 묻어나는 시나리오입니다. 근데 그 진심은 본인의 경험을 통해 우러나올 수 있는 것이죠. 나를 둘러싼 환경 속에서 충분한 내적 고민의 과정을 거친다면 분명 좋은 시나리오를 작성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결국 예술은 ‘나’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기 때문이죠. 정답은 ‘나,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Q3. 영화 <서편제>를 보신 후 ‘삶이 바뀔 만큼’ 큰 충격을 받으셨다고 들었는데요. 그때가 ‘소리를 아는 영화감독’의 시작 시점이신지, 아니며 다른 계기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국악과 영화는 제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이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걸, 제가 잘할 수 있는 걸 이야기로 풀 때 영화에 진심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국악을 하나의 좋아하는 수단으로써 영화에 사용했는데요. 국악은 영화가 가진 서사의 힘을 돋보이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국악과 영화를 모두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으로서 우리의 소리, 우리의 음악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까지 우리의 것을 아름답게 담는 영화를 제작하고 싶었습니다. K-POP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판소리를 통해 한민족이 가진 흥과 한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Q4.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고법’ 이수자이신데요. 영화학과를 졸업하신 후 2000년대 초 인사동에서 또래광대 활동을 하시고, KBS 국악한마당, 광주 MBC 얼씨구 학당에 출연하시는 등 ‘고수’로서 활발히 활동하셨습니다. 졸업 후 영화 관련 직종이 아닌 고수로서 활동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대학생 때 그랬던 것처럼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영화 작업과 음악 활동을 병행했습니다.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등 영상 및 영화 제작자로서의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고수’로서 활동도 이어갔습니다. 어떻게 보면 음악 활동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당시 저는 스스로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가고 싶었습니다. 회사를 작게 차려 소소한 영상들을 제작하며 영화를 놓지 않았고 국악인으로서도 다양한 경험을 하고자 했습니다. 어느 하나 놓은 것이 없었던 것이죠. 이 모든 경험이 제가 꿈꾸는 영화인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의 경험들이 모두 영화의 소재로 이어졌고, 그 경험들이 있었기에 제가 영화에 진심을 담을 수 있었으니까요.

 

Q5. 영화감독님이 추천해주시는 작품을 중앙대학교 학생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데요. 대학 시절 혹은 지금까지 감독님께서 보신 영화 중 가장 감명 깊게 보신 영화, 감독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영화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좋은 영화가 정말 많아서 추천해 드리고 싶은 영화가 매우 많은데요. 최근 상영 중인 영화 <오펜하이머>을 감독하신 크리스토퍼놀란 감독님의 작품 하나를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인셉션>이라는 영화인데요. 우리 사회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영적인 영역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져 왔는데요. 1980년대 경제가 발전하면서 유토피아, 디스토피아를 논했습니다. 지금은 그다음 시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는데 정거장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영화 <인셉션>이라고 생각합니다. 분석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큰 화면으로 편안하게 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Q6. 감독님께선 유일무이한 한국형 뮤지컬 영화를 탄생시키셨는데요. 국악과 영화 두 분야의 최고 전문가이시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합니다. 두 분야에 깊이 있게 ‘몰두’할 수 있었던 감독님만의 팁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에 온전히 몰두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왜 계속 마이너(비주류) 장르를 하려고 하냐’,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어떻게 사냐’, ‘왜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냐’ 등 제 선택과 관련해 많은 핀잔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를 믿었습니다. 국악과 영화를 하는 것이 저에게 가장 큰 행복이었고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죠. 자신을 믿고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의 소리를 믿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죠.

물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남이 선택한 길을 가서 성공하는 것보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서 실패하는 게 차라리 낫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꿈을 꾸는 청춘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언제 내가 완성될까’, ‘나는 언제 성장할까’와 같은 생각을 하며 제 꿈을 펼쳐 나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력자입니다. 나를 믿고 묵묵히 응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못 해낼 게 없습니다. 저에겐 96학번 후배이기도 한 아내를 필두로 한 몇 명의 지인들이 있었는데요. 그분들이 없었다면 해내지 못했을 일이라 생각합니다.


 

PART 2. 영화감독이자 국악인 조정래, 우리의 소리를 영화로 표현하기까지

 

Q1. 감독님의 대표적인 작품 <귀향>과 <광대 소리꾼>을 아직 시청하지 못한 중앙 가족들에게 어떤 작품인지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귀향은 1943년 아무것도 모른 채 일본군 손에 이끌려 가족의 품을 떠났던 14살 정민이가 겪은 아픔을 그린 영화입니다. 위안부로 그 참혹한 전장에서 살아남은 그녀가 이제 그 아픔을 잊고 살려 했다가 자기보다 먼저 용기를 낸 같은 피해자의 외침에 말문을 연다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광대 소리꾼’은 소리꾼들의 희로애락을 조선팔도의 풍광명미와 아름다운 가락으로 빚어낸 가장 한국적인 뮤지컬 영화입니다. 천민인 소리꾼들의 한과 해학의 정서를 진솔하면서도 따뜻한 연출로 담아냈는데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소리 그러나 제대로 감상한 적이 없는 우리의 정통 소리를 재해석해 현대음악 시스템으로 재창조한 음악영화 ‘소리꾼’은 가족과 휴머니티의 복원을 염원하는 열망이 표현된 작품입니다. 


Q2. 감독님의 작품 중 영화 <귀향>을 인상 깊게 봤습니다. <귀향>이라는 영화를 제작하시게 된 계기와 이 영화를 촬영하며 느끼신 점이 궁금합니다.

영화 <귀향> 제작은 영화감독으로서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처음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2001년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의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을 봤을 때인데요. 졸업하고 같이 국악 활동을 하던 친구들끼리 봉사에 가서 만난 분들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었습니다. ‘나눔의 집’ 봉사활동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의 실상을 마주할 수 있었는데요. 수많은 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하루에 수십 명의 군인과 성관계를 강요받고 무자비한 폭행, 질병에 시달리다 타지에서 죽어갔습니다.

모두가 전쟁의 참상을 알고 전쟁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길 바랐습니다. 그리고 위안부들의 넋을 고향으로 모셔 오고 싶었습니다. <귀향>에서 한자 ‘귀’를 귀신 귀(鬼)자로 사용한 이유입니다. 영화를 한 번 상영할 때마다 한 분의 영혼이 고향에 돌아온다고 믿으며 제작한 영화가 바로 <귀향>입니다. 일본제국 국군주의의 참혹한 전쟁 범죄이자 인권을 무참하게 밟은 일을 전 세계에 알리고 본보기로 보여줘서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합니다.

 

Q3. 영화 <귀향> 제작 과정에서 난항을 겪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끝까지 영화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영화를 마치고 다신 영화를 안 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를 끝내는 게 저에겐 큰 미션이었죠. 영화 <귀향>을 계기로 위안부 피해 여성에 대한 문제에 많은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게 된다면 죽어도 한이 없었습니다. 끈기나 사명 이런 개념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했던 것입니다.

영화 <귀향>은 제작부터 개봉까지 14년을 기다려 왔습니다. 무수한 고비를 넘겼어야 했는데요. 예산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투자자를 물색했지만 “왜 어려운 주제를 다루려고 하냐”며 등을 돌렸습니다. 영화 제작을 위해 사비를 제작비에 보태기도 했고, 스태프들도 함께 동참해주었습니다. 재능기부 차원에서 연기를 해준 배우들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턱없이 부족했던 제작비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마련했고 ‘귀향’ 티저 영상을 본 7만 5,000여 명의 후원자가 제작비 절반에 해당하는 12억 원을 마련해줬습니다. 혼자서는 절대 해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모두가 함께 진심에 공감하고 뜻을 모아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Q4. 모든 작품이 특별하겠지만 국악에 대한 애착이 강하신 감독님께 우리의 소리를 다룬 영화 <광대 소리꾼>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실 것 같은데요. 소리꾼은 감독님에게 어떤 의미의 작품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곤 합니다. 영화 <귀향>은 저에게 사명과 같은 작품이었다면 영화 <광대 소리꾼>은 저에게 소명과 같은 작품입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저는 영화 <서편제>를 통해 한국의 전통음악에 매료됐고 전통음악을 통해 표현되는 한민족이 가지고 있는 흥과 한과 같은 것들에 대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이 감정을 관객들에게 음악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당시 제가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를 추적해 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 민족의 정서를 관객들에게 느끼게끔 함으로써 우리가 어떤 민족이었는지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광대 소리꾼>을 통해 우리의 소리, 우리의 음악, 우리나라 풍경 그리고 우리 가족 이야기까지 우리의 것을 아름답게 담을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Q5. 영화에 다소 대중적이지 않은 국악이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점을 약점이라고 평가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영화의 소재로서 꾸준히 ‘국악’을 활용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첫 번째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제가 가장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우리 음악이 갖는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판소리가 발굴되지 않은 금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장르로서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판소리는 K-POP의 근원이자 우리의 정체성이며 우리의 DNA이기 때문이죠.

 

Q6. 영화 <광대 소리꾼>을 보면서, 나오는 음악들이 전혀 국악이라 느껴지지 않을 만큼 편안하게 느껴졌는데요. 판소리가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관객분들이 스토리에 몰입한다면 소리는 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튼튼한 서사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고요. 다음으로 판소리를 쉽게 풀어서 전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소리지만 제대로 감상한 적이 없는 우리의 정통 소리를 재해석해 현대음악 시스템으로 재창조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참고로 감독판으로 만든 <광대: 소리꾼>은 사람이 중심인 반면 극장 개봉판 <소리꾼>은 소리가 중심인 영화라는 점을 알고 보시면 더욱 흥미롭게 관람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Q7. 당시 투자자나 배우들에게 작품을 제시했을 때의 반응은 어땠나요?

투자자분들에게도 판소리가 익숙하지 않았던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판소리가 K-POP의 근원이라는 점을 강조했고, 이 부분이 투자자분들과 배우분들께 큰 울림으로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K-Culture의 원조라는 점에 많은 공감대를 형성해 주신 것이죠. 그래서 많은 기대와 성원 속에서 행복하게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감독인 제가 연주자이기도 했고 주인공을 배우가 아닌 명창으로 캐스팅한 점, 100% 리얼 사운드를 사용한 점 등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귀향>에 많은 분이 공감대를 형성해 주셔서 다음 작품인 영화 <광대 소리꾼>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신 것 같습니다.

 

Q8. 감독님께서 시나리오를 작성하실 때 역사적 고증, 입체적인 인물의 표현 등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작업하는 포인트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말씀해 주신 것 외에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다양한 경험과 내적 고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나의 이야기를 푸는 일입니다. 그래야 영화에 진심을 담을 수 있으며 진심이 곧 관객들에게 울림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해당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작 의도는 창작자가 가지고 있는 욕망, 욕구와 깊은 연관이 있는데요. 그 지점에서 영화가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재밌는 시나리오라도 진심과 그 속에서 풍기는 울림이 없다면 그 작품은 관객분들의 공감대를 형성해 내기 어렵습니다. 제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작품을 꾸준히 제작하는 이유입니다. 결국 비밀은 ‘자신’한테 있는 것이죠. 경험을 많이 하고 그 속에서 충분한 내적 고민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무언가를 경험하기 힘들다면 책을 추천해 드립니다. 오감을 활용해 책을 읽어보십시오.

 

Q9. 영화감독으로서 혹은 국악인으로서 앞으로의 목표 혹은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영화 <초혼, 다시 부르는 노래> 제작에 몰두할 예정입니다. 민중의 고단함과 연대의 힘을 이야기해 보려고 하는데요. <초혼, 다시 부르는 노래>은 소중한 민주주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990년대 치열했던 학생 열사들과 노래패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았습니다. 제가 대학 시절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떠올리며 진심을 담은 영화를 제작하려고 합니다. 마스크 벗고 극장에 들어서 같이 노래를 부르고 함께 즐기는 콘서트 같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이번 영화의 첫 신이 동아리 활동 모습인데, 기회가 된다면 꼭 우리 후배님들과 함께 중앙대학교에서 촬영하고 싶네요. 앞으로 단순히 열심히 살아가기보다 신이 저에게 주는 임무나 사명이 있다면 기도 중에 찾아 그렇게 해나가려고 합니다.

 

Q10. 마지막으로 중앙대학교 후배들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중앙대학교’가 없었다면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우리 학교 동기, 선후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특히 4.19의거와 굵직굵직한 역사의 한가운데 언제나 중앙인이 있었고 이내창 열사와 같은 선배들이 이어온 ‘중앙인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죠. 후배님들도 중앙대학교 학생이라는 점에 큰 자부심을 가지셔도 됩니다.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부단히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무한한 가능성과 꿈, 그리고 희망이 있는 청춘을 응원합니다.



취재 / 글 / 사진

중앙사랑 31기 서정호(사회복지학부 2학년)

중앙사랑 31기 조광재(시스템생명공학과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