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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찍는 간호사, 이강용(간호학과 13) 동문을 만나다.

관리자 2020-07-28 조회 8112

최전방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이강용 간호사(간호학과 13)가 있다.

뒤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걷는 간호사이자 사진작가인 이강용 동문을 만나보자



Q. 이강용 동문님 반갑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서울대학교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강용입니다.




Part 1. 간호학과 학생 이강용


Q1. 간호학과에 입학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저는 사실 제가 간호사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공군사관학교에 가고 싶어 했기 때문에 공군사관학교를 지원했는데, 신체검사 과정 중, 안과 검진에서 결격사유가 발견돼서 떨어졌습니다. 하지정맥류를 발견해서 수술하러 강북삼성병원에 입원했어요. 오랜 꿈을 이루지 못해 힘들었던 때에 우연히 병원에서 남자 간호사분을 봤어요. 그때 그분을 보고 마음의 울림을 느꼈고, 미래를 생각했을 때도 전망 있는 직업으로 느껴져서 간호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Q2. 간호학과 이강용은 어떤 학생이었나요?


1학년 때는 간호학에 대한 생각이 깊지 않아서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군대를 갔다 와서 학업에 대한 욕심이 생겼습니다. 축제 때도 중앙 도서관에서 공부했어요. 그 당시 윤도현 밴드랑 연예인들이 많이 왔었는데 귀마개를 끼고 도서관 화장실에서 공부를 했던 적이 있을 정도로 격하게 공부를 했죠. 어느 정도 목표로 했던 정점을 찍고 나니 만족감을 느꼈고, 그 후에는 조금 느슨하게 공부를 했던 것 같아요. 이후에는 취미 생활을 즐기고자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기도 했어요.

 


Q3. 간호학과만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남학생들이 간호학과로의 진학을 망설이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사회적 인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제가 임상해서 일을 해보니 남자 간호사도 많고 남자 간호사에 대한 인식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더라고요. 또, 오히려 남자 간호사를 선호하는 경우도 있고요. 현실적으로 취업이 확실하다는 것도 간호학과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정도 상위권의 성적을 가지고 졸업하면, 이름있는 병원에 가서 타이틀을 달고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장점도 있죠. 역시 아무래도 가장 큰 장점은, 뻔하지만 취업이 아닐까 싶습니다.

 


Q4. 현재 중앙대학교에서 응급실 간호사로 강의하고 있는데, 어떤 강의를 하나요?


지도교수님의 부탁으로 강의를 시작했어요. 사실 응급실 실습지는 많지 않습니다. 심지어 제가 일하고 있는 서울대학교 병원 응급실은 너무 바빠서 실습생을 아예 받지를 않아요. 그래서 강의에서라도 최대한 자세하게 학생들에게 응급실 간호사의 일에 관해 설명해주려고 해요. 실제 의학드라마에서의 역할과 진짜 임상에서의 역할은 어떻게 다른지, 고충과 장단점들은 무엇인지에 대해서요. 후배들에게 강의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 실제 듀티표를 보여주고 급여나 복지 같은 부분까지 여과 없이 보여주면서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Q5. 간호학과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과연 자신이 목표로 하는 병원에 갈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이 많을 거예요. 그런 후배들에게 저는 성적이나 토익과 같은 것보다 자신이 목표로 하는 병원을 가기 위해 노력한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진정으로 그 병원을 목표로 하는 진정성이 과정으로 보여야 하고, 또 그만큼 자신을 브랜딩 하는 것이 중요해요. 지금 걱정이 많은 거 알아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하고 있는 걱정은 나중에 지나고 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고 내가 왜 이런 걱정을 했을까 싶을 정도의 걱정이 됩니다. 걱정하지 말고, 자신의 선택에 불안해하지 마세요.

 


Part 2. 응급실 간호사 이강용

 

Q1. 다들 힘들어 기피하는 응급실의 임상 간호사로 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저는 현장의 분위기를 중요시했는데, 군대 가기 전에 알던 친구가 응급실에서 일하고 있어서 물어봤어요. 친구가 몸은 힘든데 같이 파이팅해서 일하는 분위기라고 말해주더라고요. 이렇게 일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던 게 저에게 큰 영향을 줬어요. 그리고 ‘응급실’이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느낌에도 끌리더라고요. 저희는 루틴대로 일하고 있지만 응급실에 방문하시는 분들은 응급실에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예민한데요. 응급 환자들이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나의 리더십과 판단력으로 일해야 하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 같아요



Q2. 3차 진료기관인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면 위중한 환자들을 많이 마주하실 텐데,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나요?


제가 생각이 단순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일 끝나고 옷 갈아입고 나오면 정말 다 잊어버려요. 근데 가끔은 그렇게 안 되는 경우도 있어요. 예를 들어 보호자가 저에게 했던 말에 화가 나기도 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을 마음속에 담아두면 결국 제 손해로 돌아온다는 걸 깨달았어요. 좋지 않았던 일은 빨리 잊어버리는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한 것 같아요. 실제로 그런 트레이닝을 병원에서 제공해 주기도 하고요. 일과 사생활을 철저하게 분리해야 롱런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Q3. 응급실에서 4년간 근무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무엇인가요?


응급실에 자주 오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셨어요. 할머니가 사람이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균이란 균은 다 가지고 계신 분이었어요. 혈관 안에도 균이 자랄 정도로요. 투석하시는 분이셔서 몸이 퉁퉁 부으셨고, 그러다 보니 혈관을 잡기도 어려웠죠. 좋지 않은 상황이 계속되자 보호자셨던 할아버지께서 정말 예민하셨어요. 간호사들을 힘들게 했고 상식에 벗어나는 행동을 많이 하시기도 했고요. 그분이 왔다 하면 우리는 다 한숨만 쉬었어요. ‘제발 내가 담당 간호사가 아니어라’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어요. 어느 날 그분 성함이 응급실에 떴는데 DOA(Death on Arrival)로 돌아가신 상태에서 오셨더라고요. 그 순간 뭔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에겐 어머니이고, 부인이고, 소중한 딸이었을 환자 분의 몸이 안 좋아지면서 가족으로서 예민해지는 것이 당연한데, 너무 이기적으로 생각하고 그분들을 대했던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그 이후론 역지사지의 태도를 가지고, 환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며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4.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간호사인식개선캠페인’은 어떤 캠페인이며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실제로 제가 일을 해보니, 간호사에 대한 인식이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이긴 하지만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은 것 같아요. 현장에서 보니 드라마나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보조적인’ 역할과는 많이 달랐거든요. 간호사 또한 개인의 판단력과 리더십으로 환자를 책임지고 관리해야 하는 직업이에요. 그래서 아직까지도 잘못된 시선과 편견에 맞닿아있는 ‘간호사’라는 직업에 변화를 일으키고자, 많은 사람이 그동안 알지 못하고 보지 못했던 일하는 간호사들의 모습을 찍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현장의 사진을 통해 이 의료진이 얼마나 숭고한 일을 하고 있고 감사한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싶었죠. 아직까지는 그 영향력이 크진 않지만 작은 변화가 저의 삶에도 큰 원동력이 되고 있어요.

 


Q5. 자원해서 문경으로 내려가 코로나 바이러스 의료 현장으로 뛰어드셨다고 들었는데, 혹시 자원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있었나요?


코로나가 터지고 대구 쪽으로 다른 의료진들이 갈 때 아무래도 서울대학교 병원이 국가 중앙 병원이다 보니까 우리 응급실에서도 파견을 갈 것 같다고 예상했어요. 세월호 때나 포항 지진 때, 종로구 고시원에 화재 때도 우리 병원에서 주도적으로 의료진들을 파견했거든요. 수간호사님이 갈 사람을 자원 받을 때 곧바로 저는 지원을 했고, 저 포함해서 총 6명 정도가 현장으로 가게 됐습니다. 사실 그때 저는 부모님께 갑자기 통보했어요. 무척이나 갑작스럽게 당시 상황을 전달하고 바로 가게 되었다고 말했는데, 부모님이 제가 자랑스럽다며 저를 응원해 주시더라고요. 감염되면 그건 안타까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훈장으로 생각해야 한다며 잘 다녀오라고 말해 주셨던 게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요.

 


Q6. 코로나 바이러스의 최전방을 수호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생활치료센터라는 곳은 신입 직원들을 교육하는 연수원을 개조한 곳이에요. 사흘 만에 센터를 열어야 해서 정말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처음에 1주일 동안은 16시간, 18시간 일을 하면서 시스템을 구축했어요. 그렇다 보니 격리된 많은 환자의 요구를 관리하는 것이 꽤 어렵더라고요. 어느 날 밤에는 환자가 숨이 차다는 증상을 호소해서 실제로 저희가 산소통이 달린 옷을 입고 환자를 처치한 적도 있어요. 상황이 심각해서 바로 충남대학교 병원으로 이동시킬 정도였죠.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긴장해야 했던 게 조금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Q7. 간호사의 시선에서 코로나 종식을 위해 대중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한창 벚꽃 피었을 때 저를 포함한 간호사들은 많은 양의 업무를 이겨내야 했습니다. 힘들게 일을 하고 뉴스를 잠깐 보는데, 사람들이 한강에 모여 있는 모습이 나왔어요. 그 순간 사기가 확 떨어졌죠. 약간은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었고요. 최전방에서 코로나와 매일 싸우고 있는 의료진을 생각해서라도 모두가 조금씩만 서로 배려해줬으면 좋겠습니다.



 Part 3. ‘사진 찍는 간호사’ 이강용

 

Q1. 간호사라는 직업계열에서 사진 쪽으로 가기가 쉽지 않은데, 사진은 예전부터 좋아하신 건가요?


저는 카메라를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들고 다녔어요. 아버지가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셨는데 그 모습이 제 기억에 오래 남아 있었어요. 아버지의 영향을 저도 모르게 받은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제가 뭐든지 다 큰 것을 좋아해요. 가방도 큰 것, 핸드폰도 큰 것, 차도 큰 것 이렇게 좋아하는데 카메라도 크잖아요. 처음에는 그러한 매력에 끌렸던 것 같아요.

 


Q2. ‘사진 찍는 간호사’가 된 계기와 과정을 말해주세요.


병원 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는 분들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어쩌면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는 지금의 의료 시스템들은 의료진들이 밥도 먹지 않고 일해서 정착된 거라고 생각해요. 그걸 사진으로 담아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알리고자 병원 현장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사진 찍는 간호사’라는 상표를 내고 등록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Q3. 6월 26일부터 7월 5일까지 <코로나 바이러스 최전방에 뛰어든 간호사가 시선> 사진전을 열었는데요. 사진전을 열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제가 문경에 있을 때 같이 근무하던 간호사분이 취미로 유화를 그리셨어요. 그분이 동료들과 함께 그 작품들을 가지고 작은 전시회를 여셨는데 그때 저에게 사진전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권해 주시더라고요. 그 말이 저에겐 큰 동기부여로 다가왔는지 문경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바로 사진전 기획서를 쓰기 시작했어요.

 


Q4. 전시회 과정에서 중점적으로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처음에는 ‘간호사’의 모습을 담는 전시회를 기획했어요. 그런데 기획하는 과정에서 돌아보니 간호사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의료진이 각자의 영역에서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더라고요. 의료진 모두와 공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 다양한 의료진의 모습이 사진에 드러나도록 신경 썼던 것 같아요.

또, 전시회관 위치를 신중하게 선정했습니다. 바쁜 동기 의료진이 올 수 있게 하려면 사진전을 병원에서 가까운 곳으로 해야 했거든요. 접근성이 좋은 위치를 선정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인사동에 한 장소를 찾게 되었는데, 워낙 오래전부터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하는 것이 꿈이었던 저에겐 만족스러운 장소였습니다.  

 


Q5. 바쁜 일과 속에서 어떻게 사진전을 준비했나요?


일하는 시간엔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아서 자는 시간을 줄이고, 이동시간을 이용해서 틈틈이 준비했어요. 이동하면서 핸드폰으로 기획서를 쓰고, 집에 와서 자기 전에 PPT 작업과 친구들에게 첨삭을 받았죠. 일과 동시에 사진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건 핑계라는 걸 느꼈어요.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시간이 아무리 없어도 어떻게든 해내게 되더라고요.

 

Q6. 사진전의 사진들을 일기형식으로 설명했는데 따로 이유가 있을까요?


사진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부터 사진을 찍을 때마다 느꼈던 생각들을 기록했어요. 일하면서도 그 순간의 감정을 남겨놓기도 했고요. 맞춤법도 맞지 않고, 글 자체가 투박해서 걱정했는데, 오히려 감정이 그대로 전달된다며 보신 분들의 반응이 좋더라고요. 이번에 다시 7월 13일부터 병원 외래에도 무기한으로 사진전시를 하는데요. 인사동 사진전에서는 전시회가 작아서 글을 작게 뽑을 수밖에 없어서 아쉬웠어요. 근데 이번엔 좀 글자를 키워서 어르신 분들도 잘 보실 수 있게 신경을 쓰려고 해요.

 

 

Q7. 그동안 찍은 사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은 무엇인가요?


CPR 상황에서 찍었던 사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 사진은 연출이 전혀 되지 않은 완전한 실제 현장을 담아냈거든요. CPR을 하려면 AP라는 가운을 입고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모든 힘을 쏟아 내야 해요. 생사가 달린 급박한 순간을 담은 사진이라 아무래도 제일 애착이 많이 가는 듯합니다.

 

 

Q8. 방역이 철저한 병원에서 어떻게 촬영을 했으며, 모델은 어떻게 선정됐나요?


환자가 있는 장소나 방역 수칙을 지켜야 하는 곳에서는 절대 촬영을 하지 않았고, 주로 의료진들이 준비하는 모습이나 환자에게 가기 전의 모습들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또, 주로 치료실 밖에서 문이 열리는 순간을 찍거나 투명한 유리문을 통해서 병원의 모습을 담았어요. 사실상 방역이 철저한 병원에서 담고 싶은 모습을 바로바로 담기는 무척이나 어려워요. 그래서 오프 날 병원에 가서 새벽까지 기다리다가 원하는 순간의 장면을 촬영한 적도 있었어요.

촬영 모델은 그때그때 달라지는데요. 제가 일하고 있는 병원 의료진분들의 동의를 받고 촬영을 하기도 하고 다른 병원의 의료진분들을 섭외해서 촬영하기도 합니다. 신규 간호사님을 찍었던 사진도 그 간호사님 병원에 공문을 작성하여 보낸 후에 병원 측 동의를 받고 촬영했어요. 의료진 분들의 사진을 찍는 게 절차가 복잡하고 힘들더라고요.

그렇다 보니 제가 모델이 되어 찍은 사진이 많아요. 밤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어떤 간호사 선생님이 컵라면 들고 털레털레 전화하면서 탐스럽게 핀 벚나무 밑을 걸어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그 장면을 꼭 사진으로 담고 싶어서 제가 모델이 되어 머릿속에 남은 잔상을 다시 연출하여 찍은 적도 있어요. 또, 방화복을 입고 빨간색 가방을 메고 계단 올라가는 사진도 사실 저에요. 그 장면은 제가 모의 훈련할 때 봤던 장면인데, 당시 훈련 중에 카메라를 들 수가 없어서 사진을 찍지 못했거든요. 훈련이 끝나고 비상구에서 손전등으로 조명 역할을 대신하고, 삼각대를 세운 후에 제가 직접 모델이 되어 그 사진을 찍었어요.

 

 

Q9. 이전에 사진을 따로 배운 적이 있나요?


대학교 때 사진 동아리를 하면서 기술이나 촬영 방법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이후엔 다른 분들의 사진을 많이 보면서 사진을 익히려고 했어요. 다양한 사진의 구도나 색감에 대한 감이 생겼을 때 사진에 대한 구상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사진 툴이나 프로그램을 다루는 건 다 유튜브를 보고 혼자서 공부했어요. 처음에는 어려웠는데 계속 반복해서 연습하니까 늘더라고요.

 

Q10. 간호사와 사진사, 그 둘의 매력을 말해주세요.


저는 간호사와 사진사 사이에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찍을 때 보면 사진을 찍는 저는 사진에 나오지 않지만 뒤에서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해요. 그런 점이 오직 환자를 위해 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는 간호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이와 동시에 각각이 가지는 매력들도 있는데요. 사진의 매력은 DSLR의 셔터 소리라고 생각해요. 그 소리 때문에 저는 사진을 시작했거든요. (웃음) 아직도 그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설레곤 합니다. 한편, 간호사라는 직업의 매력은 누군가에게 가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아요. 아팠던 환자가 저로 인해 건강히 걸어 나가고, 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할 때 이 직업의 매력을 느끼곤 합니다.

 

Q11. 간호사 그리고 사진사 이외에 본인이 펼치고 싶은 또 다른 꿈이 있나요?


저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서른이 되기 전에 사진전을 하기 전에 바디 프로필을 찍고, 피트니스 대회에 나가보고 싶습니다. 실제로 전에 대회 준비를 했었는데요. 운동하면서 음식을 너무 부실하게 먹다 보니 영양소가 부족했는지 몸이 아파지기 시작했어요. 병원에 가서 물어보니 통풍에 걸렸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아파 준비를 중단했는데 다음에 다시 준비해서 도전해보고 싶어요.

또, 최종적인 목표가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곳에 이민을 가는 건데요. 미국 간호사 면허를 준비했던 이유기도 합니다. 아직 먼 일이지만, 언젠가 자연이 있고 조용한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어요.

 

Q12. 결이 다른 두 가지의 일을 업으로 삼고 계신데, 꿈에 대해 고민하는 청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원래 끼고 있던 팔짱을 바꿔 끼는 것도 우리에게 어색하고 쉽지가 않아요. 그런데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울까요? 누구한테나 두려울 수 있어요. 그럴 때 저는 무언가 작은 것이라도 시작해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사진을 찍고 싶다면, 일단 카메라부터 먼저 사는 거예요. 해보고 안 된다고 바로 포기하는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더 해보자’, ‘며칠간 더 해보자’ 하며 이어 나가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계속하게 되더라고요. 무언가 고민하고 있다면 일단 시작해보세요. 도전하려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전 절반은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 글 / 사진

중앙사랑 27기 이유진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3학년)

중앙사랑 28기 김조원 (사회기반시스템공학부 3학년)

중앙사랑 28기 김하늘 (간호학과 2학년)

중앙사랑 28기 서수진 (아시아문화학부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