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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색을 담는 래퍼, 조미혜(브라운아이드걸스 미료, 광고홍보학과99) 동문을 만나다.

관리자 2019-12-02 조회 12862

스스로의 색을 노래에 담아 대중에게 전달하는 조미혜 래퍼(광고홍보학과 99)가 있다.

형식적으로 구애 받지 않고 나의 길을 찾는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미료, 조미혜 동문을 만나보자.


Q0. 조미혜 동문님 반갑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광고홍보학과 졸업생 조미혜입니다. 원래 제 나이대로 제대로 갔으면 00학번이었을 텐데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교를 들어가서 99학번이랍니다.



Part 1. 꿈을 그리던 대학생 조미혜에게


Q1. 처음 광고홍보학과를 입학하려는 당시 어떤 꿈으로 지원하셨나요? 만약 현재 가수가 아니라면 어떤 길을 걷고 계실 것 같나요?


사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가수가 꿈이었어요. 그래서 가수를 하는데 학력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고등학교를 자퇴했어요. 그런데 부모님께서 ‘그래도 대학교는 가라’고 하셔서,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교에 가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제 꿈은 여전히 가수였어요. 대학교는 부모님을 위해서 갔어요. 부모님 때문에 내가 대학교를 가야 한다면 무슨 과를 갈까 하다가 제가 관심이 있던 광고에 관련된 과를 고르게 되었습니다.


Q2. 광고홍보학과로 졸업하시고 전공의 길을 걷지 않은 것에 아쉬움은 없으신가요?

 

재학 중인 당시에는 없었어요. 제 꿈은 여전히 가수였거든요. 최근에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있어요. 만약에 가수를 하지 않았고 그냥 광고홍보학과를 졸업해서 광고회사에 들어갔으면 어떠했을까 그런 생각은 해봤어요.


Q3. 광고홍보학과를 나오셨는데, 래퍼(가수)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그때 힙합이 우리나라에서 태동하던 시기였어요. 그 당시에 저한테는 힙합이 너무나 멋있고, 제일 세련된 음악이었어요. 제가 듣기에 힙합이 요즘 말로 제일 힙했어요. 그래서 너무 좋아서 가사를 한번 써봤는데 랩이 되는 거예요! ‘어 너무 재밌네? 내 생각을 음악으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그래서 빠져들었어요.


Q4. 학창시절 소위 말하는 '엄친딸'이라고 들었습니다! 공부가 아닌 랩, 음악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께서 반대는 안 하셨나요?


중학교 때 1등을 했었고, 사실 고교 시절에는 1등을 못 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는 6개월밖에 안 다녔어요. 1학년 1학기. 그때 막 질풍노도의 시기였고 학교를 더 다닐지 말지에 대해 방황을 많이 했었습니다. 일단 제가 부모님께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에 가서 가수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저는 제가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많이 표출하고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모님께서도 ‘쟤 좀 가수에 관심 있나?’ 하고 좀 눈치를 채셨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건 저만의 생각이었죠. 어머니께서 일주일 동안 학교를 못 나가게 하시고 집에서 그냥 생각을 좀 해보라고 시간을 주셨어요. 그 일주일이 지났는데 저는 “엄마 그래도 저는 가수가 꿈입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때 어머니께서 “그래 그러면 너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줄게. 지금 서울 가서 연습생이 될래 아니면 밴쿠버에 유학을 하러 갈래?” 그렇게 두 가지를 주셨어요. 그 말을 들은 저는 유학을 다녀와서도 가수를 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유학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Q5. 중앙대 힙합동아리 다씨싸이드에 들어가게 되는 과정에 대해 궁금합니다.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나요. 제가 직접 들어갔는지, 저랑 같은 과 동기인 스컬오빠(광고홍보학과 조성진 동문)가 먼저 들어가서 다씨사이드를 들어오라고 권유를 했던 건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저는 어차피 힙합을 계속 좋아하고 있었고, 대학은 그냥 명목상 다니고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제가 힙합동아리를 들어가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어요.


Q6. 중앙대학교 동아리 활동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다씨사이드 활동 중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제가 말하기 조금 쑥스럽지만 우리 학교에서 다씨사이드가 좀 인기 있고 유명했었어요. 제가 무대 올라가면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줬다는 게 특히 기억에 많이 남네요.


Q7. 중앙동아리 다씨싸이드 당시의 활동들이 현재 선배님 위치까지 있어서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음악을 할 수 있게 되었던 발판이었어요. 먼저 다씨사이드로 같이 활동을 해서 처음으로 앨범에 녹음을 해봤답니다. '2000 대한민국'이란 앨범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죠. 당시에는 '1999 대한민국', '2000 대한민국', '2001 대한민국' 같은 힙합 컴필레이션 앨범이 되게 인기 있었거든요. 다씨사이드로 공연을 하고 다니다 보니 참여할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됐어요. 그리고 다씨사이드로 같이 공연한 덕분에 제가 허니패밀리에 발탁이 되었답니다. 음악에 좀 더 본격적으로 진입할 수 있게 도와준 계기였다고 생각합니다.


Q8. 중앙대학교 재학시절 가장 즐겨 갔던 장소나 맛집 등 있나요? 있다면 그곳을 즐겼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로터리에 있던 김밥천국을 좋아했어요. 또 정문에서 나오면 오른쪽에 있던 김가네도 너무 좋아했어요. 왜 이런 프랜차이즈 김밥집이 생각나는지 의문이 드실 수 있는데 저는 우리 학교 앞 김가네가 맛있어서 모든 곳의 김가네가 맛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우리 학교 앞 김가네는 모든 메뉴가 맛있었답니다! 그래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Q9. 평범한 신분으로 다시 재학 생활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해 보고 싶나요?


그래도 저는 다시 다씨사이드에 들어갈 것 같아요.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웃음)


Q10. 동아리 후배들에게 응원이나 조언 한 말씀해주세요.


다씨사이드 후배 여러분들!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프라이드를 가지세요! 그 당시 대학 힙합동아리 연합에서 다씨사이드는 정말 대단한 동아리였답니다. 자부심을 가지시고, 우리 동아리 출신에 진짜 저뿐만 아니라 아티스트들이 되게 많습니다. 힙합 뿐만 아니라 재즈 보컬리스트도 있고, 보컬 트레이너 김성은 언니도 있고,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시는 아티스트들이 많이 있으니까 자부심을 가지시고요! 앞으로 계속 명맥 이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Part 2.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미료에게


Q1. 가수 생활을 하며 동경하거나 롤모델인 대상이 있나요? 있다면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 서태지와 아이들을 정말 좋아했어요. 서태지와 아이들의 서태지 선배님을 되게 좋아했는데 서태지 선배님이 자퇴하신 분이에요. 아마 제가 그분의 영향을 받아서 고등학교를 자퇴했던 것 같아요.


Q2. 언더그라운드의 래퍼에서 한 그룹 (아이돌)의 래퍼가 되는 것에 있어서 망설임은 없었나요?


브라운 아이드 걸스가 될 때보다 허니패밀리에 들어갈 때 망설임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언더그라운드 지향적인 활동을 하다가 갑자기 메인스트림의 아티스트가 된다고 하면 제가 변했을 거라는 시선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 당시에 조금 망설여졌었어요. 처음에 허니패밀리가 될 때, '내가 그래도 될까?'라고 좀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허니패밀리에서 브라운 아이드 걸스가 됐을 때는 망설임보다는 제가 음악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그 자체로도 감사하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Q3. 미료를 가명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그냥 어렸을 때, 남자애들이 “넌 조 씨니까 조미료! 조개껍데기!” 이런 식으로 놀렸는데 그 조미료에서 미료가 된 거예요. (웃음)


Q4. 미료에게 힙합은 어떤 의미인가요?


힙합은 그냥 자유, Freedom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표현의 방식이나 스타일, 형식적으로 구애받지 않고 나답게 나의 소울을 가장 멋있게 표현하면 되는 거라 생각해요.


Q5. 브아걸 '미료'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게 걸크러쉬가 생각나는데 실제 조미혜 선배님의 성격도 걸크러쉬가 넘치나요?


그 걸크러쉬가 뭔지 잘 모르겠네요. (웃음) 팀에서 래퍼고, 우리 브라운 아이드 걸스 이미지가 있어서 아마 그렇게들 많이 불리는 것 같아요. 사실 소위 말하는 센 캐릭터로 활동할 때는 걸크러쉬라는 단어가 없었어요. 잠시 활동을 쉴 때 걸크러쉬라는 단어가 생기기 시작을 했고, 센 언니라는 단어가 생기기 시작했답니다. 그러면서 저희를 그렇게 불러주셔서 '아 그래? 그럼 우리가 그런 사람들인가 보다.' 했어요. 당당하고 자기 할 말 소신 있게 하는 이미지를 걸크러쉬라 부르는 것 같아요. 근데 사실 저는 그렇지는 않아요. 평상시에 그렇진 않고 남들 눈치 많이 보는 편인데…. 그런데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길을 보면,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했잖아요. 음악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음악을 했고, 이런 걸 보면 해야 할 때 당당하게 하는 것 같기도 해요.


Q6. 최근 유튜버로 활동하시고 계시는데, 유튜브를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유튜브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나요?


유튜브는, 제가 게임을 엄청나게 좋아하는데 유튜브에서 다른 사람들의 게임 영상들을 많이 보다가 저도 올리고 싶어져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인터뷰 처음에 제가 가사를 쓰고 싶다고 했던 거랑 똑같아요. 그냥 본능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다고 회사에 얘기했더니 해도 된다 해서 시작하게 됐었어요.


유튜브 채널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제 영상들을 보고 사람들이 즐겁고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저의 영상들을 볼 때 예쁘고 멋진 영상들을 기대한 분들도 많으셨어요. "언니 얼굴 예쁘게 나오는 브이로그 많이 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분들도 계셨고요. 그런 것들도 올려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꼭 전하고 싶은 것은, 제 영상을 보면서 많은 분께 즐거움을 전하고 싶어요.


Q7. 4년 만의 브라운 아이드걸스 컴백인데, 이번 앨범에서 특별히 차별화된 부분이 있나요?


기존에는 퍼포먼스 위주로 많이 했었는데, 이번에는 보컬을 많이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리가 맨 처음에 시작할 때도 실력파 하이브리드 알앤비 소울 그룹이었습니다. 좀 길죠? (웃음) 그때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답니다.


Q8. 브라운 아이드 걸스로의 미료는 조미혜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지금 어느덧 거의 제 인생의 반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브아걸이 아니면 안 되게 되었어요. 너무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거의 나의 전부처럼 되었답니다.


Q9. 가수 활동을 하면서 내신 곡 중 가장 애정하시는 곡은 어떤 건가요?


저의 첫 솔로 타이틀곡이었던 ‘Dirty’랑 최근 앨범의 솔로 곡 ‘초대’가 열심히 준비한 만큼 애정이 많이 갑니다. 그 외에도 제 유튜브 채널에 오면 제가 mix tape이라고 올려둔 게 있어요. 꼭 들어 봐주세요!


Q10. 몇 년째 불화 없이 견고한 브라운 아이드 걸스 멤버들은 본인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인가요?


저희는 정말 철저하게 비즈니스적이랍니다. (웃음) 근데 이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철저하게 ‘우리는 서로 함께 간다. 우리는 한배를 탄 동지들이다.’ 이런 마인드가 있어서 친구, 자매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끈끈한 게 있는 것 같아요.



Part 3. ‘앞으로 더 빛날’ 조미혜에게


 

 

Q1. 평범한 대학생에서 연예계로 가셨는데 활동 중 가장 힘들었던 경험, 가장 행복했던 경험이 무엇인가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것들은 다 해야 했고 참 감사하게도 하고 싶은 것들을 다 이뤄왔어요. 7~8년 전에 했던 인터뷰에서 ‘여러분 꿈은 현실이 됩니다. 꿈꾸세요! 왜 꿈을 가지지 않나요?’ 이런 논조였는데. 그후 7~8년 사이에 실패를 겪으며 ‘아, 꿈꾼다고 다 되는 건 아니구나. 그리고 그동안 내가 정말 복을 많이 받으면서 살았던 거였구나.’하고 감사함을 느꼈어요. 저의 그 실패들이 남들이 보기엔 '그 정도의 실패 가지고 왜 우울하다고 하는 거야? 실패라고 말할 수도 없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여러 번의 실패와 좌절들이 반복되다 보니 저는 너무 우울했어요. 결국 이 일이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고 좋은 평가를 얻어야 하는 일인데, 그렇지 못한 댓글들이나 반응이 나올 때면 이 세상에서 내가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어요.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 상태로, 아무 의욕이 없는 무기력한 상태가 되었답니다. '세상 일이 정말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구나. 그런데도 나는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쉽게 꿈을 가지라고 했던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제 목표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는 단계까지 됐어요. '이 길이 정말 내 길이 맞는 걸까? 꿈? 내 꿈이 뭘까? 내 꿈이 정말 가수가 맞을까?' 막 여기까지 생각하게 되었죠. 하지만 그런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좀 더 성숙해지고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되었고 더 깊어진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런 일들이 있어서 지금 내가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요. 정말 고마워요. 이 일을 하면서 행복했던 일은 내 음악들로 사람들이 꿈과 용기를 얻고, 치유된다고 할 때, 내가 만들어낸 컨텐츠들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때입니다. 그럴 때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행복하다고 느껴요.


Q2. 앞으로 조미혜에게, 브라운 아이드 걸스 미료를 떠나서 본인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 하는 게 있나요?


앞서 언급한 그런 일들을 겪다 보니까 내가 너무 남의 시선에 좌우되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남의 평가에 휘둘리지 말아야겠다는 걸 깨달았고, 앞으로는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으로, 내가 바라는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미료가 되겠다. 그렇게 당당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에게 보여지는 제 모습들이 제가 의도하는 모습들일 확률이 높습니다. 굴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까지의 저처럼 계속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어요. 그런 아이돌이 되고 싶습니다.


Q3. 현재 자신의 진로와 꿈을 고민하는 중앙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대학교 1학년 때 정말 자유롭게 놀았어요. 근데 요즘은 대학교 1학년 친구들이 자유롭게 놀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안타깝더라고요. 다들 '대학교만 가면 해방이다!' 하고 올 텐데, 대학교 오면 또 다른 지옥문이 열리는 거잖아요.

그렇지만 지금 당장 앞만 보지 말고, 넓게 10년, 20년, 30년 후까지 보시면 지금의 대학교 타이틀이라든지 무슨 회사에 입사한다든지 등이 전부가 아니란 걸 알게 될 겁니다. 자기에게 맞는 색을 찾는 거에 좀 더 집중하길 바라요. 내가 누구인지, 나의 장단점을 발견하는 데에 좀 더 시간을 쏟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또 하나 꼭 명심하실 것은, 'negative vibe'는 절대 버리셔야 한다는 겁니다. '난 이래서 안 될 거야, 저래서 안 될 거야.' 하면서 고민하면 진짜 안 돼요. 그런 생각을 아예 지워 버리세요!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에요. 그런 것들은 다 없애고 계속 긍정적인 생각들에만 초점을 맞추세요. 그런 상태로 열심히 노력하면 진짜 이루어집니다. 힘내세요! 쉽지는 않지만, 우리가 믿는 대로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너무나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시기예요. 여러분들은 지금 뭐든지 이룰 수 있고, 뭐든지 될 수 있습니다. 끝까지 정말 좋은 생각만 하면서 꿈을 이뤄내시길 바랄게요. 파이팅!


 


인터뷰/글

중앙사랑 27기 박미소 (생명자원공학부 3학년)

중앙사랑 27기 서지원 (전자전기공학부 4학년)


인터뷰/사진

중앙사랑 27기 이유진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3학년)